관객을 사로잡을 광기 어린 루치아의 절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
22~23일 금정문화회관
캐슬린 김·최원휘 등 출연
전막 다름 없는 콘서트 오페라
‘광란의 아리아’로 유명한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가 오는 22~23일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베일을 벗는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모든 배역(A·B조 더블 캐스트)과 합창단·오케스트라·무용단까지 모여 리허설이 한창인 지난 18일 금정문화회관을 찾았다.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무대를 보는 순간, 전막 오페라와 ‘콘서트 오페라’의 차이점이 궁금했다. 부산시는 오는 2026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제작 중심 극장으로 운영하기 위해 ‘부산오페라시즌’을 운영 중인데 올해는 두 편의 오페라를 제작했다. 1편은 전막 오페라로 부산문화회관이 지난달 26~27일 선보인 ‘토스카’였고, 다른 1편은 금정문화회관이 이번에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다.
“이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무대·연출·의상·분장·조명·영상 등 전막 오페라와 거의 같습니다. 사실 전막 오페라로 봐도 될 것 같은데 오케스트라가 피트에 들어갈 수 없어서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이탈리아어로 ‘오페라 콘체르탄테’라고 하면 음악에 좀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음악과 무대 둘 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막과 콘체르탄테의 중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콘서트 오페라’로 지칭합니다.”
이번 오페라 제작을 총괄하는 금정문화회관 이성우 프로듀서의 말이다. 그러자 함께 있던 권민석(38) 지휘자도 말을 보탠다.
“저도 처음엔 오케스트라가 피트에 내려가지 않는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관객이 오케스트라 소리도 보고 들을 수 있고, 무대(세트)와 의상, 암보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성악가도 볼 수 있으니까요. 전막을 다하면 3시간 조금 넘는 시간일 텐데 우리는 줄이고 줄여서 2시간 10~15분 정도로 공연할 예정입니다.”
권 지휘자는 이번 공연을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왔다. 물론 이 오페라 한 편 지휘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지난 7월 초부터 국내에 머물면서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3회)를 비롯해, 노블아트오페라단 ‘세비야의 이발사’(4회), 춘천국제고(古)음악제 폐막 공연 헨리 퍼셀의 ‘아서 왕’ 콘서트 오페라 지휘 외에도 본인의 특기인 리코더 연주회 등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리코더)를 수료한 권민석은 서울대 음대 작곡가(이론전공) 재학 중 네덜란드로 건너가 헤이그 왕립음악원 고음악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부지휘자(2015~2017)를 역임한 후 본격적인 오페라 지휘에 나서고 있다. 이번 작품에 특히 주목한 이유를 물었다.
“여러 작품 이야기가 나왔어요. 금정 쪽에선 좀 더 재밌거나 슬프거나 감동이 있는 걸 원했지만, 제 생각엔 다소 충격적인 듯하지만 오늘날 관객에게도 말을 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코틀랜드 당시 극작을 100년 후 도니체티가 보고 감동해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듯, 약 200년 전 도니체티 작품이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부산은 물론이고 국내선 거의 드물게 공연되는 작품이다. 그만큼 희소성이 있다. 이유인즉슨, 주인공 루치아 역의 하이라이트인 ‘광란의 장면’ 같은 경우 20여 분이나 걸린다. 이를 제대로 소화할 성악가가 많지 않다. 사람의 성대는 유한해서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소프라노도 정점을 지나면 이 역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힘들어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부산 공연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 노래를 국내에선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다는 소프라노 캐슬린 김(48)이 출연한다.
캐슬린 김은 2007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며 콜로라투라로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맨해튼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캐슬린 김은 현재 한양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권 지휘자는 캐슬린김과의 첫 리허설 장면을 들려줬다.
“저도 정말 놀란 게 성악가들이 첫 리허설에 오면 목도 아끼고 그러는 편인데 선생님(캐슬린 김)은 첫 피아노 리허설부터 100% 내지 120%를 보여 주셨어요. 노래라는 것이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걸 떠나서 그 인물이 가지는 복합적인 면들을 해석해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체화해서 노래해 주시니까, 그렇게 노래하는 분이라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정말 아티스트구나라고 느꼈어요. 게다가 트릴을 연주하시는데 마치 편집증이나 광기가 이미 있었던 사람처럼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오케스트라에 트릴을 약간 히스테릭하게 해 주세요 라든지,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암시나 복선을 줄 수 있도록 연주해 달라고 당부하려고요. 저는 이번에 와서 선생님께 정말 많이 감동했어요.”
캐슬린 김은 오히려 담담하게 루치아를 이야기했다. “이번 루치아라고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이 역할을 좋아하는 편인데 제의가 들어오면 웬만하면 다 응합니다. 저는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오페라에서도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루치아는 흔치 않은 드라마잖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루치아의 감정이라든가 평소 잘 접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황이 상당히 매력적이거든요.”
그는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 시즌 공연에서 루치아를 맡은 적이 있고, 그전에도 미국 등에서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캐슬린 김은 리허설 에너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오페라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얼마나 페이스 조절을 잘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게다가 제가 이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이라고 해도 1년에 한 번이잖아요. 그러면 제 상황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거죠. 저는 연습 때 그런 걸 체크하는 편입니다. 연습 때 살살 하게 되면 무대에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연습 때 해 보고 힘들다 싶으면 컨디션과 페이스를 조절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역할 말고는요. 평소 하던 만큼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이번엔 테너 최원휘(43)가 거들었다. 그는 캐슬린 김의 상대역인 에드가르도로 등장한다. 루치아와 사랑하는 사이다. 최원휘는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석사학위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2013년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로 데뷔했다.
“선생님(캐슬린 김) 연습하는 걸 보면 1주일 내내 공연해도 되겠다 싶어요. 저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 오페라하우스 무대를 2020년에야 데뷔했지만, 선생님은 훨씬 전부터 메트에 출연해서 공연 때마다 직접 가서 보면서 꿈을 키웠어요. 이번 공연도 선생님께서 루치아라고 해서 단박에 출연하겠다고 말했어요.”
이번 작품은 어떻게 보면 좀 더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권민석 지휘자는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스토리를 알고 극장에 오면 좋겠다”면서 “외국에서는 공연 전에 대본(가사집) 판매도 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알면 극을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원휘는 “루치아라는 한 명의 디바가 극을 끌어가는 건 맞지만, 다른 캐릭터도 개연성을 갖고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캐슬린 김 역시 “극장에 온 뒤로는 역시 성악가의 몫이 클 것”이라면서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오페라가 이런 거였어!' 혹은 ‘자주 보러 가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160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룬 영국 작가 월터 스콧의 소설 ‘래머무어의 신부’를 원작으로 1845년 이탈리아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됐다. 집안의 반대로 원치 않은 상대와 결혼하게 된 신부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첫날밤에 신랑을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작품은 특히 광기 어린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주인공 상황을 작곡가 도니체티 특유의 섬세한 선율로 담아낸 수작으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오페라’=22일 오후 7시 30분, 23일 오후 5시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지휘 권민석, 연출 이회수, 오페라 코치 김정운, 합창 지휘 김강규. 출연 소프라노 캐슬린 김·구민영(이상 루치아), 테너 최원휘·김준연(에드가르도), 바리톤 이승왕·이광근(엔리코), 베이스 김대영·신명준(라이몬도), 테너 정은성(아르투로), 테너 김지훈(노르만노), 메조 소프라노 사비나 김(알리사). 합창·연주 2023 부산오페라하우스 합창단·오케스트라. 입장권 R석 5만 원, S석 4만 원, A석 2만 원.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