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고향길에 함께 듣는 ‘고향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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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민족 명절에 생각하는 실향민의 아픔
한반도엔 여전히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한민족 백년대계 생각하는 시간 되길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김운하 작사·서영은 작곡 ‘고향무정’ 중에서)

최근 젊은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 ‘고향무정’은 MZ세대가 리메이크곡에 관심을 두는 추세를 고려해도 아무래도 생뚱맞다. 하지만 노래가 탄생한 상황과 고향을 숙고하면 부모 세대의 삶과 우리의 삶을 고향을 공통분모로 대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 히트곡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재편되던 한국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속에 탄생했다. 전쟁과 빈곤의 폐허 속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삶의 방식을 포함한 혁명적인 이동을 뜻했으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출향인들에게 노래 ‘고향무정’은 정감 어린 대중가요로 거듭났다.


그 후 60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나라가 됐다. 그 시절 고향을 떠난 이에게 그리던 옛 고향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변한 지 오래다. 노래 가사처럼 물이 마른 산골짝과 시골집은 폐허가 됐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형됐을 터이다. 그래도 고향은 영혼의 옹달샘 같은 것이어서 나그네의 부평초 같은 삶을 향수로 자극하고 눈물샘을 건들기도 한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죽더라고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감정의 의미가 더해진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오래전 노래이지만 한가위나 고향 특집에서 빠지지 않고 젊은 인기 가수 임영웅도 열창하는 것을 보면 시대와 경계를 불문하고 팍팍한 현재를 위로하는 호소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바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한국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곳이 되었기에 우리는 지난 몇십 년 빠른 속도로 뛰어왔고 계속하여 뛰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뛰는 것일까. 현재 우리가 뛰고 있는 방향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결국 목적지의 방향은 크게 틀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큰 후회나 재앙에 직면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개인이건 국가이건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출발한 지점을 통해 가려는 방향을 점검하는 것이 필수 요건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뛰어왔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 민족의 근래의 집단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전쟁과 분단이라는 워낙 거센 역사의 파도와 우여곡절을 겪어 왔기에 모두에 좋은 기억만 주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오늘의 우리 형편이 과거보다도 여유롭고 되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한다. 며칠 후면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동산 위로 둥그렇게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모두의 마음을 조금은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바라건대, 민족 대명절의 여유 속에서라도 한민족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두운 분단에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 국민적 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두의 추석에도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이들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바로 실향민들이다. 사실 노래 ‘고향무정’은 전쟁과 분단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아픈 사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망향의 노래이다. 이 노래의 작사가 김운하(金雲河·1914~1978)는 함경북도 웅기가 고향인 월남 실향민이다. 노래가 탄생한 1966년 어느 날, 김운하는 이북 오도민 망향제를 올리고 있는 임진강을 찾아 고향 하늘을 바라보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고향의 모습을 생각하며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 된 올해에도 전쟁과 그 불안의 그림자는 여전히 한반도에 드리워져 있고 고착된 남북 분단 상황은 상실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해방과 6·25를 겪으며 북녘에 고향을 둔 1000만 실향민도 이제는 4대로 이어 가고 있으며 그들의 애절한 향수는 사실 모두의 아픔이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가족이자 우리의 동포인 북한의 2495만 주민들의 운명은 어찌할 것인가.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더해진다. 8000만 한민족이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통일된 한반도는 우리 민족이 이룰 수 없는 설움과 향수로 남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전쟁과 빈곤의 폐허 속에서 풍요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이룬 것처럼 민족의 도약과 웅비를 향한 통일 백년대계를 계속 꿈꿀 것인가. 젊은 가수 임영웅이 리메이크한 ‘고향무정’을 들으며 기성세대와 MZ세대 모두가 이러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는, 먹먹하지만 풍성한 고향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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