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동백’은 지속 가능할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독, 9유로 티켓 인기 ‘나비 효과’
서울 ‘기후동행카드’ 내놔 관심

대중교통 요금 인상 꼼수 의혹에
전국 최초 동백패스 비판 쏟아져

정부 내년 도입 ‘K패스’도 유사
예산 낭비 없게 시민 감시 필요

부산공공성연대는 지난달 18일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부산시가 대중교통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공공성연대 제공 부산공공성연대는 지난달 18일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부산시가 대중교통요금 인상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공공성연대 제공

독일에서 시작된 ‘9유로 티켓’이 한국의 대중교통 요금 정책에 ‘나비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9유로 티켓(1만 2000원)으로 한 달간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는 이 정책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올 5월부터는 한 달 49유로(7만 원)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으로 바뀌었는데, 재정 부담을 줄여 장기적인 제도로 안착시키기 위해서였다. 티켓 판매 첫날 독일 철도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다니 대중교통 이용 확대는 물론 기후 보호 효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알고 보니 지난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동차 유류세 인하 요구가 터져 나오자, 중도우파인 자민당 소속 교통장관이 9유로 티켓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것을 연정 파트너인 집권당 사민당과 중도좌파인 녹색당이 받아들여 탄생한 것이다. 정쟁만 넘치고 협치는 사라진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부산시장 선거에서 정의당 김영진 시장 후보가 처음으로 ‘월 1만 원으로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을 1호 공약으로 내걸어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정의당은 내년 총선에서도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 무료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고 뛰고 있다. 부산시가 전국 최초로 대중교통 통합할인제인 ‘동백패스’를 내놓은 것도 독일의 성공 사례를 따르려는 움직임에서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부산보다 뒤늦게 내놓은 ‘기후동행카드’에 더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내년부터 한 달에 6만 5000원으로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서울시민들의 호응이 상당히 좋고, 같은 교통생활권인 경기와 인천이 동참할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9유로 티켓의 취지를 그대로 가져온 카드 이름이나 49유로 티켓과 거의 비슷한 요금까지 짝퉁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많은 이들이 반기니 잘하는 일이다.


반면에 부산시가 전국 최초로 시도한 동백패스는 시민단체·언론·야당으로부터 연일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일단 동백패스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한 따가운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산의 시내버스·도시철도 요금이 다음 달 6일부터 인상되어 전국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비싸진다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발이 거셀 것 같으니 월 4만 5000원 이상 대중교통 요금을 사용하면 매달 최대 4만 5000원을 돌려주는 제도를 급하게 들이민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게 볼 근거가 있다. 동백전 카드는 금융기관 3곳에서 발급하지만, 동백패스는 현재 부산은행 동백전 카드로만 환급할 수 있다. 동백패스는 동백전 후불교통카드로만 사용할 수 있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신용 약자와 청소년은 아예 혜택을 볼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부산시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는 권고를 했지만 부산시는 뭐가 급했는지 무시하고 바로 시행에 나선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자 중에서 53%는 월 4만 5000원 이하를 사용해 절반 이상이 사실상 동백패스의 혜택을 전혀 못 받는 셈이다.

두 번째는 ‘동백’에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2020년에 도입된 동백전은 예산 소진으로 캐시백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캐시백 요율도 수시로 바뀌었다. 동백패스 안내문을 꼼꼼하게 보면 ‘본 사업은 부산시 정책에 의거 시행 시기나 혜택 등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또 동백패스 환급 기준에는 ‘매월 부산시 정책에 따라 환급 구간이 변경될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예산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동백전처럼 환급액을 축소하다 나중에는 없애 버리려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특히 정부가 내년 7월부터 도입하는 ‘K패스’가 큰 변수다. K패스는 선·후불식 카드에 모두 적용되고, 청년 30%·저소득층 53% 적립으로 더 많은 혜택이 있다. 부산시는 동백패스와 K패스를 합쳐 활용도를 높혀 보겠다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정부정책과 거의 유사한 교통비 환급 제도를 위해 부산시가 1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할까.

올해 세수 펑크가 60조 원에 가깝고 이에 따라 지방교부세는 23조 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부자 지자체인 서울과 경기도 일원은 상관이 없지만 가난한 지자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생겼다.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는 기초생활 대상자에 한해 49유로 티켓에서 24.8유로를 할인해 준다고 한다. K패스와 겨루기보다 부산시가 K패스조차 부담스러운 취약계층이나 청년층에 지원금을 더 지급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다. 아직 시행 초기인 동백패스가 예산 낭비는 없으면서도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때이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