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1902~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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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꾄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집 〈망향〉(1939) 중에서


행복한 삶은 풍요로우면서 평화로운 상태일 것이다. 양식이 풍성한 상황에서 ‘나’와 이 세계가 무르익어가는, 여유롭고 안온한 상태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것을 무릉도원, 혹은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다. 누구나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굶주린 욕망을 채워 더 이상 걱정이나 근심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 유년의 어머니 품속과 유사한 절대적 안전 상태가 그런 이데아의 세계다.

일제강점기하 암담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김상용 시인도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가 그리고 있는 전원, 즉 ‘밭이 한참갈이’로 평화롭고, ‘강냉이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은 아무 걱정 근심 없는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그곳을 모르는 사람이 ‘왜 사냐’고 물어보아도 마음 한가로워 씩 ‘웃고’ 말 수 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자신이 이미 무릉도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마음 한가로움이야말로 현실에 나타난 꿈의 촉수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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