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하지 말자” 글로컬 탈락 지역 대학 ‘혁신 유예’
5년 1000억 지역대 살리기 사업
부산대·부산교대·인제대 예비 지정
고배 마신 10여 곳 혁신안 ‘올스톱’
예산 부담 탓 사업 진행 동력 ‘시들’
선정 기준, 미래 계획에 방점
통합안 등 손질해 내년 도전장
정부가 5년간 예산 1000억 원을 특정 지역 대학에 투입해 지역대를 살리는 글로컬 대학 사업이 ‘글로컬의 역설’에 부딪혔다.
대학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대학들이 글로컬 대학을 이유로 혁신을 미루는 일마저 벌어진다. 모호한 글로컬 대학 선정 기준 탓에 정책에 회의론마저 제기된다.
19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의 15개 대학 중 글로컬 대학에 예비 선정된 부산대, 부산교대, 인제대를 제외하고는 지난 7월 글로컬 대학 예비 지정 이후 혁신안을 추진 중인 학교는 없다. 새로운 학사 운영 방식 등을 내 눈길을 끌었던 학교들은 대부분 혁신을 유예했다.
4년제 대학, 전문대, 사이버대의 첫 통합 모델을 혁신안으로 냈던 동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의 통합 논의는 현재 중단됐다. 부경대는 학과 구분 없이 신입생이 입학해서 전공을 선택한 뒤 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전공 리셋’ 제도 도입을 혁신안으로 냈는데, 올해는 기존 방식대로 학과별로 학생을 모집했다. 학제 개편이나 학과 통폐합을 제시했던 대학에서도 글로컬 대학 탈락 이후 논의는 전무하다. 전국적으로 글로컬 대학 신청에 13개 대학이 통합 모델을 냈는데 선정된 4개 통합 대학을 제외하고 통합을 추진 중인 곳은 없다.
이 같은 현상은 ‘규모 있는 혁신은 글로컬 대학 사업에 신청하자’는 분위기가 대학가에 팽배하면서 빚어진 역설적 풍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컬 대학 사업이 없을 때는 대학 자체 예산 등으로 혁신에 나섰지만, 글로컬 대학 사업이 추진된 이후 대학 처지에서는 막대한 예산 투입이 필요한 학과 구조조정, 대학 통합 등을 굳이 자체 예산을 확보해 추진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대학 간 통합, 학제 개편 모두 구성원 동의가 필수적인만큼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지 않으면 추진 동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판단도 깔렸다.
동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는 내년 글로컬 대학 모집 때 통합안을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부경대도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면 예산을 확보해 전공 리셋 등 혁신안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글로컬 대학 선정 기준이 과거 혁신 성과보다는 미래 계획에 맞춰진 점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컬 대학 모집에 부산의 4년제·전문대 16개 대학을 포함해 전국에서 108개 대학이 응모했는데 선정된 15개 예비지정 대학 중 과거 혁신 사례를 기반으로 선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정부의 글로컬 대학 평가 기준(안)에 따르면 △혁신의 비전과 목표는 기존 대학 운영의 틀을 넘어 과감하고 도전적인가 △대학 안팎, 대학 내부(학과, 교수)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혁신적인가 등 혁신성을 평가하고,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혁신성에 60점, 성과관리에 20점, 지역적 특성에 20점을 배점했다. 전례 없는 혁신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취지이지만, 결과적으로 평가 기준이 대학에 ‘혁신을 미리 하지 말자’는 분위기를 형성해 혁신을 늦추는 요소가 된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부산의 한 대학 총장은 “지역 대학이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대학 구조를 바꾸는 진짜 혁신은 정부 주도의 글로컬만 바라보는 상황”이라며 “내년 선정부터는 기존 혁신 성과 검토 등을 포함하고 탈락 대학 지원책도 구체화하는 등 글로컬 대학의 방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글로컬 대학 예비 지정 대학 15곳은 다음 달 6일까지 대학 구성원, 지자체, 지역 산업계 등과 함께 실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본지정 평가 결과는 오는 10월 말 발표된다. 정부는 올해 10곳, 내년 10곳, 2025년 5곳, 2026년 5곳 등 총 30개 대학을 글로컬 대학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