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문화관광도시 부산이 되려면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현재의 자연경관 위주 관광 아쉬움
부산은 많은 역사유적지 갖춘 도시
성곽·봉수·왜관·고분·사찰 등 풍부
다양한 탐방 코스 개발·홍보 중요
시민들도 부산역사에 관심 가져야
그래야 ‘다시 찾고 싶은 도시’ 가능
‘그린 스마트 도시 부산’을 구현하기 위한 부산시의 정책 중에 ‘누구나 찾고 싶은 문화관광 매력 도시’라는 항목이 있다. 작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중에 부산의 명소 8곳을 선정했다. 태종대, 해운대와 송정 해변, 감천문화마을, 용두산·자갈치 관광특구, 용궁구름다리와 송도 해변, 오시리아 관광단지, 엑스더스카이와 그린레일웨이, 광안리 해변과 SUP 존이 그곳이다. 이 정도면 문화관광 도시로서 구색을 갖춘 듯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감천문화마을을 제외하면 부산의 역사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빼어난 자연경관만 관광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런 관광지만 돌고 나면 관광객들은 부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해수욕과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만 여기진 않을까.
산, 강, 바다로 둘러싸인 부산은 훌륭한 경치 외에도 많은 것을 갖고 있다. 부산은 성곽·봉수·왜관·고분·사찰의 도시이기도 하다. 성곽만 봐도 동래읍성을 비롯해 배산성·동래고읍성·좌수영성·금정산성·부산진성·다대진성·기장교리읍성·기장읍성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성만 해도 부산왜성(증산왜성)·자성대왜성·기장죽성리왜성·구포왜성·가덕도왜성·죽도왜성·눌차왜성 등이 있다. 이렇게 많은 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산시민도 많다. 이 성들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혹은 일본의 침략으로 생겨난 것이다. 황령산 봉수를 중심으로 가덕도부터 기장까지 해안을 따라 늘어선 봉수도 유사한 용도였다.
한편, 평화로울 때는 일본인과의 교역을 위한 왜관이 운영됐다. 그렇게 부산은 대마도가 보이는 국경에 위치하면서, 숱한 침략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국방의 교두보였다. 이런 부산의 역사는 경관 위주의 관광만으로는 알 수 없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현재 동구도서관과 증산공원이 있는 공간이 바로 증산왜성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총사령부 역할을 한 곳이다. 전망대가 선 곳은 일본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본환’이고, 그 아래로 게이트볼장이 있는 곳이 본환을 감싸는 ‘이환’이다. 그 바깥을 따라 걸어보면 임진왜란 당시 쌓은 성벽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면 ‘증산왜성’이라고만 쓴 팻말이 있을 뿐, 이곳이 당시 만들어진 왜성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안내판은 없다. 증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시루를 거꾸로 엎어 놓은 왜성의 모습에서 비롯됐다. 부산포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이 부산진성 안과 밖의 건물을 다 허물고 수백 채의 새집을 지은 광경을 목도하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최근 부산진성으로 이름을 바꾼 자성대도 조선 후기에 부산진성을 새로 쌓으면서 왜성을 성안으로 포함한 것이다. 2개의 성문만 부산진성을 복원했는데, 그 문을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60~70도로 경사지게 축조된 일본식 성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자성대 앞바다가 바로 충무공이 부산포해전을 치른 현장이고, 10월 5일 부산시민의 날은 바로 부산포해전이 벌어진 날이다.
조선은 왜성의 견고함을 눈여겨보았고, 조선의 수군진이 위치한 곳에 있는 왜성은 파괴하지 않고 재활용했다. 전쟁 당사자였던 조선도 그대로 살려뒀는데, 현재의 우리가 일본 잔재라며 없애버리자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왜성은 임란이라는 전쟁에 대한 다시 없는 물증이며, 우리에겐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증산왜성을 살펴 보고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용복을 기념하는 부산포 개항 문화관, 부산여성 교육의 출발점인 일신여학교, 부산 3·1운동의 중심지였던 부산진교회, 임란 때 전사한 부산진 첨사 정발 장군을 기리는 정공단, 조선 후기 부산진이 있었던 자성대와 조선통신사 역사관 정도만 둘러봐도 부산의 특성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부산 문화·역사 탐방을 위한 코스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각 코스의 정보를 제공하는 팸플릿을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엮어 역이나 공항에 비치할 필요가 있다. 직접 가보지는 않더라도, 부산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기회에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부산시민들이 부산의 문화·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애정을 갖지 않는 도시라면, 다른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주변의 문화유적에 관심을 가지고, 관광객들에게 간단하더라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매력적인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경관이나 유적뿐만 아니라 부산시민들도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찾고 싶은 도시 부산을 만드는 일은 부산시민인 우리가 반드시 함께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