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말뿐인 국제평화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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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9월 19일 남북이 맺은 군사합의 폐기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논란이 뜨겁다. 9·19군사합의는 당시 남북 정상이 비핵화와 경제협력을 목적으로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체결된 부속 합의서다. 접경지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다양한 군축 조치가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군사합의가 남북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핀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열린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전 대통령 역시 군사합의의 효과를 강조했다. 2010~2017년 북한의 대남 국지 도발이 무려 237회였으나 군사합의 체결 이후 5년간 17회로 줄어든 까닭이다. 하지만 국방부와 국민의힘은 군사합의로 우리 국방력에 제약이 생긴 반면 북한은 여전히 합의를 위반한 도발을 일삼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주력해 합의를 빈껍데기로 만들었다며 합의 효력을 정지하자는 입장이다.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건 핵무장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 제재가 먹혀들지 않아서다. 이는 국제평화 최고 의결기구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감싸고도는 영향이 크다. 중국이 같은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데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유명무실해진 탓도 있다. 초강대국들이 평화라는 허울 좋은 말을 앞세우면서도 속으론 자국 이익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려는 의도가 안보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특히 러시아는 최근 북러 정상회담을 갖고 장기화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 도입을 위해 군사협력을 논의했다. 이에 따른 무기 거래나 핵·미사일 기술의 북한 이전은 그동안 10차례 이뤄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위배된다. 19일에는 영토 분쟁이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중재자 역할을 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골몰하는 새 또다시 무력 충돌해 확전이 우려된다. 유엔이 1982년부터 매년 9월 21일 기념하고 있는 ‘국제평화의 날’을 제정한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한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올라선 게다. 안보리가 제 기능을 잃은 상황에서 국제평화를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한국에 요구된다. 이와 함께 북핵에 단호한 원칙으로 대응하면서도 중국·러시아와의 외교 관계에는 보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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