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카메오처럼 자기 그림에 등장하는 화가들
그림 속으로 들어간 화가들/파스칼 보나푸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다. 제목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간 화가들>이 그렇다.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는 “화가는 문인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림 속에 드러난다”고 했다. 왜 화가는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넣을까. 작품에 서명을 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리는 역사의 한 장면에 자신을 등장시키고 싶은 것이다.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슬쩍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가들의 숨바꼭질에는 자신의 실력을 잠재적 후원자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의도가 있단다. 심지어 끔찍한 장면에 등장하는 화가 얼굴도 있다. 17세기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에서 목 잘린 골리앗을 자신의 얼굴로 그렸다.
대개 가장자리 한 인물의 시선이 감상자 시선과 맞부딪힌다면 그것이 자화상의 증거다. 15세기 기를란다요 ‘스피니가의 아이를 살려낸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에는 30여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화면 밖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맨 오른쪽 인물이 화가의 자화상이다. 타데오 디 바르톨로 같은 화가는 1401년 산타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성화 속에 화면 밖을 빤히 쳐다보는 자신의 얼굴을 작게 그려넣었다. 16세기 소도마처럼 ‘체의 기적’이란 그림의 정중앙에 대놓고 자신을 아주 크게 그려놓은 경우도 있다.
17세기 벨라스케스도 유명한 ‘시녀들’뿐만 아니라 자화상을 넣은 작품을 많이 그렸다. 20세기 오토 그리벨은 많은 군중이 서 있는 ‘인터내셔널가’란 그림에, 광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유독 다른 인물 자화상을 그렸다.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스칼 보나푸 지음/이세진 옮김/미술문화/328쪽/2만 9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