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젊은 거장’ 손열음이 쳐야 했던 낡은 피아노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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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부산 연주 큰 감동 줘
부산시민회관 30년 된 피아노
전문가 “소리 뚝뚝 끊어지는 느낌"
피아노 업그레이드에 관심 필요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개관 50주년 기념 음악회로 열린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커튼콜 모습. 김은영 선임기자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개관 50주년 기념 음악회로 열린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커튼콜 모습. 김은영 선임기자

연주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관객 반응도 열렬해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음악회는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지만, 흥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에서 개관 50주년 기념 음악회로 열린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이야기다.


명불허전 손열음 등 기립박수 쏟아져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가 세계 최정상급의 오케스트라는 아니라고 해도 현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연주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특히 바그너를 장기로 하는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현재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기도 하다-의 첫 곡 ‘탄호이저’ 서곡과 앙코르곡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 연주는 독일 악단의 명성을 짐작게 했다. 오히려 젊은 지휘자 잉키넨을 만나 더욱 새로워졌다는 평가였다.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 개관 50주년 기념 음악회에 출연한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가 앙코르를 준비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 개관 50주년 기념 음악회에 출연한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가 앙코르를 준비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공연 후반부를 장식한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중요한 리듬과 강약의 다이내믹을 절묘하게 조합하면서 리스트가 말한 ‘리듬의 화신’ 혹은 바그너가 지칭한 ‘무도의 화신’이라는 표현이 확 와닿았다. 우아하면서도 단호한 잉키넨의 지휘가 인상적이었다. 현의 합주는 체임버 앙상블처럼 우아했고, 역동적인 관악기 사이에서 팀파니는 과하지 않게 중심을 잡아 나가면서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부산보다 앞서 열린 통영국제음악당(17일) 같은 음악회에선 베토벤 대신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선보였다고 하는데,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부산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젊은 거장’ 손열음의 연주는 명불허전이었다. ‘역시, 손열음!’이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난곡으로 꼽히는 곡이어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가 컸다. 부산 연주에서 손열음은 대체로 차분하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대담한 연주를 펼쳤다. “섬세하면서도 정열적이다” “더욱 원숙해진 손열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30년 된 낡은 피아노 이제는 교체해야

다만 손열음의 연주가 아닌 피아노 자체에서 상당한 우려가 제기됐다. A 피아니스트의 말이다.

“피아노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뚝뚝하는 피아노를 감수하고 저 정도로 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손열음은 대단하구나 싶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정말이지 온몸으로 치는 손열음을 보면서 손가락이라도 다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됐다. 함께 연주한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연주가 끝나고 손열음을 만나 피아노 상태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런데… 솔직히 좀 그랬어요. 얼마나 오래된 피아노인가 싶어서 시리얼 넘버를 확인해 봤더니 꽤 되긴 했더라고요.”

피아노 시리얼 넘버까지 확인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했다. 시리얼 넘버엔 피아노 제조 일자와 국가 등이 새겨져 있다. 손열음은 미안해하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피아노 상태에 대해서 질문해 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피아노 상태에 따라 (연주에도) 차이가 크죠. 사실 피아노는 소모품이어서 저 정도 오래된 건 고치는 것도 한계가 있긴 하거든요.”

지난해 10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앙코르 연주 모습. 김은영 선임기자 지난해 10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앙코르 연주 모습. 김은영 선임기자

조성진 연주 땐 다른 피아노 가져와 연주

사실 부산시민회관 피아노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때는 부산문화회관 피아노를 시민회관으로 옮겨와 연주하고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사실 피아노도 예민한 악기여서 이리저리 공연장을 옮겨 다니는 것만으로도 손상이 입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땐 시민회관 피아노로는 도저히 연주하기 어렵다는 연주자 요청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부산시민회관엔 1993년산 스타인웨이 D-274 피아노 한 대뿐이다. 이마저도 2017년 부산문화회관 다듬채(연습동)에 있던 것과 맞바꾼 거였다. 그전에는 1978년산 스타인웨이로 연명했었다. 정기적으로 조율사가 관리한다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참고로 금정문화회관은 지난해 금정구의회에서 4억 원가량의 예산을 반영하면서 21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새 걸로 교체할 수 있었다.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개관 50주년 기념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연주가 끝나고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자가 관객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지난 19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개관 50주년 기념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연주가 끝나고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자가 관객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지휘를 위해 부산에 머무는 권민석 지휘자도 이날 손열음 음악회를 찾았길래 다른 공연장 상황은 어떤지 물었다. “통상 피아니스트들은 연주장에 가면 두세 개의 피아노를 쳐 보고 그중에 본인이 마음에 드는 걸 고릅니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요. 또 전담 조율사가 있어서 연주 직전까지도 최적의 피아노 상태를 까다롭게 체크하고, 연주 끝날 때까지 조율사가 대기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인터미션 때 피아노 상태를 점검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최고의 음악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거죠.”

비단 피아노 한 대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번 부산 음악회가 서울 세종 천안 광주 통영 부천 등 7개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에서 유일하게 매진되지 못한 공연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공연장 시설이 한몫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긴,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 중에는 같은 연주자 공연이라도 부산이 아닌 통영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도 들으러 가기도 한다. 이번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with손열음’ 때도 그랬다. 거액이 들어가는 부산오페라하우스도 좋고, 국제아트센터 건립도 좋은데, 부산의 공공 공연장 피아노도 업그레이드 좀 시켜주면 좋겠다. 부산시와 시의회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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