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부산의 역동성은 ‘제작극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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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흔히들 부산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도시인구 감소도 위태로운 상태다. 도시의 동력은 떨어지고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난다. 도시가 역동성을 잃었다는 말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2030세계박람회에 기대거나 새로운 국제공항 건설이 그런 역동성을 가져다줄 것이라 말한다. 물론 시너지가 생기는 환경을 만들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의 역동성은 새로운 건물이나 어떤 일과성 행사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현재 암스테르담 존 애덤스 연구원장으로 있는 러셀 쇼토는 저서 〈세상의 중심이 된 섬〉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독창적인 개방성이었다”며 그런 신세계의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구체화 된 발상지가 맨해튼이라 했다. 그러면서 뉴욕은 미국에서도 문화적 융합이 너무 거칠고 극단적이어서 미국이 아닌 외국에 있는 독립체 같다는 표현까지 했다. 즉, 도시 속에 다양한 문화가 서로 부딪힐 때 역동성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 내는 문화는 그 종류가 너무도 다양하여 모든 부분을 다 알 수 없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으로는 필자의 눈에 보이는 것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서양 클래식은 우리의 문화와는 관련이 없는 것인가부터 짚어봐야 한다. 이 문제는 한국에 있는 IBM이 한국 회사인가 미국에 있는 삼성이 미국 회사인가 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배척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문화라는 것은 주변에 있는 다른 문화와 섞이면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전용 극장 오페라하우스·국제아트센터

기획·생산·소비까지 담당하는 제작 기지로

문화의 구심점 역할 땐 부산의 미래 활짝

우리가 전통과 고유문화라 하는 것도 인접국들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오랜 세월을 거쳐 바뀌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문화는 다른 문화 요소와 만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기도 하고, 다른 장르와 만나 또 다른 장르를 만들기도 한다. 문화·사회·역사·지리적 융합을 통해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 클래식이라서 우리 문화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면 이는 문화가 가진 물과 같은 속성을 간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문화가 재즈이듯이 문화는 온갖 것이 섞이면서 발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은 기초 예술이 낙후한 도시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좋은 공연에 수많은 관중들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몰리는 것을 보면 그런 장르를 향유할 관객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좋은 공연이 많지 않거나 경험한 것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음악적인 관점에 한정한 것이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예술을 “금이 되는 진흙”이라 했다.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와 건축가 안도 다다오 덕분에 영국 여행 잡지로부터 ‘꼭 가봐야 할 세계 7대 명소’ 중 하나가 된 일본의 조그마한 섬 나오시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주간 부산광역시는 부산 지역 최초의 전용 극장이 될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의 건립에 따라 시민들의 네이밍 선호도를 조사했다. 2개 공연장의 명칭을 구체화해 브랜드 디자인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며,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세계인이 찾고 싶은 ‘문화관광 매력 도시’ 부산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는 것이 부산시의 취지였다. 그렇지만 이름을 공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극장 속에 담을 내용이다. 그 해답은 일과성 행사나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 명품관을 둘러보고 바구니에 담아오는 식의 프리젠팅 시어터에도 있지 않다. 정답이 진정한 ‘제작극장’에 있음을 음악가들은 모두 알고 있다.

부산 사람이란 현재 부산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고향이 어디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부산이다. 부산은 항구였고 피난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넉넉하게 품었다. 원래부터 그런 도시였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전문성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정착해 먹고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자. 그들은 많은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환경을 보장하면 오게 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부르는 것은 새로 만들어지는 오페라하우스와 국제아트센터가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되면 가능하다. 그들이 모이면 부산은 한국 최고의 예술창조 도시가 될 것이다. 음악이 음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도 같이 융성할 것이며 문화가 이끌어 가는 미래 산업도시도 만들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살아온 그들의 경험이 부산이라는 가마솥에서 들끓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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