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비평가와 예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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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창작과 비평 연구소 창고(創庫)에서. 남영희 제공 창작과 비평 연구소 창고(創庫)에서. 남영희 제공

인간은 비판에 취약하다.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충직한 신하의 처참한 말로는 자주 회자된다. 가까운 이가 건넨 진심 어린 충고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자락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비판을 뇌리에 깊이 새기는 까닭을 생존전략과 연결하여 논의하기도 한다. 비판을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이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인간은 근원적으로 비판에 민감한 존재가 아닐까.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미술평론가 강선학을 찾았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비탈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이다. 잿빛 간판에는 ‘창작과 비평 연구소 창고(創庫)’라 새겼다. 평생 천착해 온 창작과 비평의 산실이자 예술의 곳간이다. “비평 때문에 육탄전도 벌어졌어. 누구는 얻어맞기도 했지.” 그 또한 미술비평으로 작가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단절된 경우를 적지 않게 경험했다. 지난 8월 지역작가의 작품과 전시회에 관한 평론을 모은 17번째 저작 〈그 바깥에서의 다툼〉(2023)을 내놓았다. 부산미술사회의 최전선에서 생산적인 ‘다툼’을 마다하지 않은 묵직한 발걸음이다.

“공부가 덜 되면 비평을 냉혹하게 못하죠. 1급 연주자라야 공연평을 할 수 있는 게지.” 작품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지식과 날카로운 비평적 감식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16차례 개인전을 연 작가라는 점에서 비평가 강선학의 자리는 분명하다. 〈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2021)은 부산형상미술에 주목한 저작이다. 작가이자 비평가로서의 예민한 감각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강선학은 미술관이나 전시기획자의 의도가 전경화되고 작가의 자리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즈음의 전시회 풍토를 우려한다. 미술의 권력화나 상품화로 이어지는 길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산미술사회는 창작에 견주어 비평이 현저히 부족하다. 음악이나 무용, 연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평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있어도 주례사 비평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 잣대나 비평적 안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설픈 인상주의 비평으로 치닫기도 한다. 알량한 비평이 지역 예술계에 어떤 도움이 될까. 생산적인 비평은 지역문화예술의 성장 동력이다. 부산에서 미술비평의 텃밭을 꿋꿋하게 일구어 온 강선학의 비평적 실천이 소중한 까닭이다. 비평은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면서도 작가나 예술사회와의 불화를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설익은 상찬이나 섣부른 비난이 아니다. 예술가와 예술사회, 나아가 예술에 대한 파국의 형식이 아니라 운명적인 사랑의 실천이다. 다양한 해석의 갈등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예술은 누구와 소통할 수 있으며 우리 시대와 사회에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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