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 차별하는 일본 사회 바꾸기 위해 소설을 쓴다”
자이니치 코리안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 부산 방문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
백년어서원서 번역 출간 기념
“극심한 차별 구조 사회
스스로 부정해야 살 수 있어
이중 삼중의 분열로 나타나”
20일 자이니치(在日) 코리안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57)가 부산을 찾아 독자와 만났다. 백년어서원의 ‘제79회 사람을 꿈꾸는 책’ 행사에는 30명이 훨씬 넘는 이들이 모였다. 이재봉 부산대 교수의 번역으로 부산의 도서출판전망에서 최근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가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날 행사는 이 교수의 토론 사회, 사이키 가쓰히로 동명대 교수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작가는 ‘분열’에 대해서 말했다. “자이니치를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결국 ‘조선인/한국인이라서 안 된다’는 자책에 이르게 돼요. ‘혐오’로 표현되는 극심한 차별 구조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는데 결국 자신을 싫어하는 데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자이니치 코리안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부정해야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삶에서 여러 양상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배운 세계’와 ‘집에서 접하는 세계’가 달랐고, 집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각이 달랐어요. 그 다름은 빈번하게 싸움과 갈등으로 이어졌지요.” 이중 삼중의 분열인 것이다. 그는 “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차별 사회를 바꾸어나갈 작은 실천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미군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닌 탓에 1948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한다. 일본에 가서는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고, 민주화 운동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원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외가 쪽의 경우, 경남 진해가 고향인 외할아버지는 다이쇼시대(1912~1926)에 공부하고 싶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결국 막노동일을 했는데 1923년 간토대진재 때 학살당할 위기를 겨우 넘겼다. 그런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어머니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력을 강조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쓰라린 식민지 경험, 한반도의 격동과 분단 역사, 암울한 정치사, 비좁은 한일관계의 와중에 디아스포라 유랑의 삶을 살았던 부모는 일본 사회의 차별을 내화하는 관점 차이로 갈등했고, 그 갈등이 작가의 삶에 풀리지 않은 ‘분열적 똬리’를 틀었다는 것이다. 그 갈등과 분열은 자이니치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20세기, 아니 21세기에도 한반도의 핏물이 묻은 숱한 이들에게, 범 한반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점차 성숙을 기하려는 모습으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다.
멀고 가까운 곳에 그 원인이 산재한 ‘일본 사회의 해묵은 차별’을 작가는 자이니치 부모의 ‘슬픈’ 자식으로서, 두 아이의 ‘아픈’ 엄마로서 넘어서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 그린 것처럼 그는 가출할 정도로 뜨거운 연애를 하기도 했으며, 또 ‘한국인’이란 걸 밝혀 깨진 연애를 경험하면서 “걔는 한국인이라 안 된다”는 뒷담화를 듣기도 했다.
2012년 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일본에서는 민족학교에 가지 않는 한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다”며 “한국어 공부할 시간에 영어를 익혀야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대로 살았던 셈”이라고 했다. 이도 ‘분열’의 어떤 한 양상이다. 그런 그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살 위기의 곤고한 삶을 살았던 외할아버지는 한 많은 아리랑 노래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부르곤 했단다. 이번 소설의 핵심적 대사 중 하나인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에는 자이니치 애달픈 삶의 작은 목소리가 깃들어 있다. 소설에서 그 대사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 가타카나로 적혀 있다. ‘미안해’와 ‘사랑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분열적 삶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설을 적신다. 그는 “오늘 제 소설을 공유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부산에서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