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디지털 교육의 역설
요즘 아이들 컴퓨터 자판 치는 모습이 가관이다. 양손의 검지만으로 띄엄띄엄 겨우 쳐 낸다. 이른바 독수리 타법이다. 과제를 이메일로 제출하라고 하면 당혹스러워하는 아이가 한둘이 아니다. 문서를 쓸 줄도, 쓴 문서를 이메일로 보낼 줄도 모르는 게다. “요즘 같은 스마트한 세상에 무슨 소리!”라고 하겠지만,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라고 한다. 개인용 컴퓨터(PC)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가 디지털 환경의 대세로 자리 잡은 탓이다. 일일이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PC와는 달리 모바일 기기는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다 해결된다. 안 그래도 연필 잡을 일 없는데 이제는 자판 칠 일마저 사라진 세상이 됐으니, 아이들의 독수리 타법을 두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일선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교육 환경은 그때와는 천양지차다. 이제는 모바일과 음성인식을 넘어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에까지 나아갔다. 변화 속도로 치면 우리나라가 단연 으뜸이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초·중·고에 디지털 교과서를 본격 도입키로 한 게 그 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밀어붙이는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교육부가 말하는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은 많다. 학생별 맞춤형 학습은 물론, AI에게 보조 교사 역할을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이 우리의 그런 모습과는 180도 다른 조치를 취했다. 유치원 등에서의 디지털 기기 활용을 전면 중단하고 일선 학교에서도 종이책을 읽고 직접 글을 쓰는 교육을 강화하는 방책을 발표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특히 학교 도서 구입을 위해 해마다 700억~800억 원의 예산을 별도로 투입키로 했다. 스웨덴만이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등도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에 돌입했다.
우리의 선택이 옳은가 저들의 조치가 바람직한가. 혼란스러운데, 미국의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의 주장이 신경 쓰인다. 디지털 세대에 진입하면서 현대인들의 뇌가 변했다는 주장이다. 매 순간 달라지는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니 뇌는 항상 긴장해 있고, 그런 정보를 빠르게 핵심만 파악해 활용해야 하니 깊고 긴 호흡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게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디지털 교육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