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로 파리는 세계 문화 수도, 부산은 문화 선도 도시 [로컬이 미래다]
엑스포 문화도시 2. 프랑스 파리
파리, 에펠탑·오르세 미술관 등
엑스포 여섯 번 치르며 새로 선봬
국가적 상징·세계적 명소로 거듭
부산도 오페라하우스 등 중심으로
시립미술관 등 기존 시설과 접목
원도심-신도시 문화 권역 구축을
“우리는 123년 동안 월드엑스포를 기다렸습니다.”
1900년 프랑스 파리세계박람회. 흰 도포를 입고 둥근 갓을 쓴 조선인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프랑스에 왔다. 조선 왕조에서 파리박람회에 세운 ‘조선관’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23년, 격동의 역사를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은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개최에 도전장을 냈다.
파리의 한국문화원에 들어서면 큰 포스터와 함께 '2030세계박람회가 부산에서 열리길 격려하고 응원해달라'는 문구가 보인다. 한국문화원을 찾은 건 지난 12일. 평일 낮이었지만 파리 시민으로 북적였다. 한쪽에선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월드엑스포 홍보 영상이 흘렀다.
■월드엑스포가 만든 ‘세계 문화 수도’
에펠탑, 알렉상드르 3세 다리, 그랑 팔레, 프티 팔레, 오르세 미술관, 샤이요 궁전, 팔레 드 도쿄…. 프랑스의 상징이자 파리 관광 명소로 꼽히는 이곳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월드엑스포를 계기로 지어진 시설이라는 점이다.
파리는 월드엑스포를 가장 많이 치른 도시다. 1855년과 1867·1878·1889·1900·1937년까지 총 여섯 번 월드엑스포를 개최했다. 파리는 그때마다 새로운 시설을 세우고 도시를 정비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파리 코뮌 내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생긴 전쟁의 상흔을 치유해 나갔다. 월드엑스포를 준비하며 세운 문화예술 시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1889년 파리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은 어지러웠던 지역을 ‘빛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마르스 광장 출입 관문에 지어진 324m 높이의 이 철제 구조물은 프랑스의 상징이자 세계 관광객이 밤낮으로 찾는 명소가 됐다. 에펠탑 앞에서 만난 아드리안 씨는 “에펠탑 야경을 보기 위해 스페인에서 친구들과 왔다”며 “에펠탑이 파리박람회를 계기로 세워진 건 몰랐다. 너무 멋진 건축물인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파리 중심을 흐르는 센강 근처에는 각종 문화시설이 즐비하다. 중앙의 루브르 박물관을 기점으로 동쪽에는 피카소 박물관과 퐁피두 센터, 서쪽에는 오랑주리 미술관과 팔레 드 도쿄·샤이요 궁전·에펠탑이 자리 잡았다. 위로는 오페라 가르니에, 아래로는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이 있어 문화예술의 ‘다이아몬드 구조’를 이룬다.
지난해에만 772만 6000여 명이 방문해 전 세계 박물관 가운데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한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파리박람회 당시 기차역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천장과 외벽, 플랫폼, 대합실 등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됐다.
박물관·미술관 통합 관람권은 이미 파리의 인기 관광상품이다. 티켓 수령처인 빅버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일수별로 다양한 문화 시설에 입장할 수 있어 관광객에게 아주 인기가 좋다”고 설명한 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 여행상품 사이트를 보면 파리 시내의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 퐁피두 센터, 판테온 등 8곳과 베르사유 궁전, 퐁텐블로성 등 파리 근교의 명소 입장권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투표까지 60여 일…‘BIE 본부’ 파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본부가 있는 파리는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막판 경쟁이 한창이었다. 오는 11월 28일로 예정된 BIE 총회와 5차 경쟁 프레젠테이션, 개회지 결정 투표를 두 달여 앞두고 ‘총력’을 쏟는 분위기였다. 파리 시내엔 부산을 알리는 ‘홍보 래핑 택시’가 돌아다녔다. 외국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관문인 샤를 드골 공항 입국장에는 부산월드엑스포 홍보 광고가 걸려 공항을 찾는 이들을 반겼다.
K문화는 이미 세계 곳곳에 스며들었다. 파리 16구 쁘헤시덩 월송가 근처에서 만난 레베카 씨와 타미샤 씨는 가방에 BTS 지민과 트와이스 나연 액세서리를 달았다. 레베카 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젠 정말 좋아하는 곳이 됐다”며 “지난해 부산에서 펼쳐진 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에도 다녀왔다”며 웃었다. 타미샤 씨는 휴대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더니 “트와이스 사진을 깔았다”면서 “월드엑스포가 열린다면 부산에 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와 재계의 전방위적 ‘원팀’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지난 12일 파리 페닌슐라 호텔에서 열린 ‘한국-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은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행사의 일환이었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함께 가장 강력한 ‘표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BIE 회원국은 최근 가입한 북마케도니아,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포함해 총 181개국이다. 이 중 아프리카 국가는 49개국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민간 부문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
1세션에 패널로 참여한 최경림 전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 의장은 “한국이 2030월드엑스포를 유치할 경우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상당한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이라며 월드엑스포 유치에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다. 최 대사는 현재 BIE 협력대사를 맡았다.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파리에 상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활동 중인 대통령실 장성민 미래전략기획관은 만찬사에서 “번영하는 아프리카는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함께 진정한 파트너십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문화·역사 살린 스토리텔링으로 승부
파리박람회가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한데 모으고 정비해 이를 세계에 확산하는 계기가 됐듯 2030월드엑스포는 부산을 ‘문화 선도 도시’로 나아가게 할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파리가 월드엑스포를 통해 혼란스러웠던 지역을 ‘빛의 도시’로 개조한 것처럼 부산월드엑스포는 도시계획을 세울 틈 없이 팽창해버린 부산의 원도심을 재생시킬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 숨 쉬는 지역 역사는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부산의 경우, 월드엑스포 이후 문화예술의 더 큰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에펠탑과 오르세 미술관이 구심점이 된 것처럼 북항에 지어질 오페라하우스와 중구 중앙동에 들어설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원도심-신도시의 문화예술 시설과 ‘하나의 서클’을 구축할 수 있다. 부산에는 부산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과 국립해양박물관, 부산박물관, 영화체험박물관, 해양자연사박물관 등이 이미 들어섰다. 신구 시설을 잘 접목한 뒤 지역 문화예술의 선순환 시스템을 오랜 시간 지속시키면 부산도 ‘세계 문화 도시’로 우뚝 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은 부산의 막판 스퍼트를 돕고 표심을 얻게 할 핵심 카드가 될 수 있다. 부산의 문화와 역사를 잘 살린 스토리텔링은 필수 요소다. 부산에는 문화예술 기반 시설이 여럿 있고, 매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지스타 등 국제 문화 행사가 열린다. 부산에서 로케이션한 작품과 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한 K콘텐츠는 이미 세계 곳곳을 휩쓴다.
이런 장점과 더불어 부산에 문화예술 기반 시설을 추가 설립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 홍보 전략으로 활용한다면 월드엑스포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관광공사 이진수 파리지사장은 “국제 행사가 열리면 공식 일정 이후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수요와 문의가 있다”며 “부산의 문화예술과 접목해 잘 홍보하면 표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파리(프랑스)/글·사진=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