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서정주(19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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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시집 〈미당 서정주 전집〉(2015) 중에서

달빛도 무거울 수가 있구나! 얼마나 빛이 환하고 가득하길래 꽃가지가 휠까? 서정주 시인은 한가위의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하고 놀라운 발상을 내보인다. 그렇기에 온 천지에 달빛이 부서지는 밤, 식구들이 둘러앉아 송편 빚는 모습은 정겹다 못해 눈물 나는 풍경이 된다. ‘휘영청 달빛’에 물든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몽환적이어서 ‘뒷산 노루들도 좋아 울’고,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깔깔거릴’ 수 있는 원환적(圓環的) 동일성의 세계를 이룬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원의 형상에서 발생한다. ‘달’이 보여주는 원환적 심상과 ‘식구들’이 둘러앉음으로 인해 생기는 원의 형상, 거기에 ‘풋콩’이 가지는 부드럽고 생기있는 둥근 이미지는 모든 시적 분위기를 원만과 풍요로 채워 넣는다. 여기에 어머니의 모성이 덧보태져 부드러움과 안온함이 도드라진다. 이런 세계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정말 고향집 툇마루엔 아직 달빛이 내려 쌓이고 있을까?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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