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다양한 장르의 혼종, '천박사 퇴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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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오컬트·액션 등 장르 넘나들어
무속신앙 활용한 판타지 작품
강동원·허준호·박정민 등 출연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 CJ ENM 제공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 CJ ENM 제공

아무리 미신이라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해도, 어머니는 한 귀로 듣고 또 한 귀로 흘렸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그곳으로 향했다. 새해에는 신년이라고, 가족 중 누가 아프면 괜히 일이 생길까 노파심에 찾았다. 그곳에서 받아온 부적을 지갑에 넣어두라는 어머니에게 구시렁거리면서도 나는 해마다 그걸 고이 접어 보관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역사는 오래전부터 의학이나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샤머니즘에 기대어 온 건 아닌가 싶다. 그게 어디 우리뿐인가. 이탈리아 감독인 비토리아 데 시카의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도 주인공이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결국 점집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도 한국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무속신앙과 결합해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무속을 믿지 않는 ‘천박사’가 가짜 퇴마의식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귀신을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딱히 신통력이 있는 것도 아닌 천박사. 그는 귀신을 부르는 건 인간의 약한 마음과 머리라고 생각하며, 파트너 ‘인배’의 기술빨과 자신의 현란한 입담, 사람을 꿰뚫어 보는 분석력과 통찰력으로 퇴마의식을 해결해 왔다. 하지만 현재 퇴마 연구소의 재정 상태는 엉망으로 당장 사무실 관리비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로 그때 돈다발을 들고 ‘유경’이 찾아온다.


유경은 자기 집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 주면 수임료를 더 주겠다는 기묘한 제안을 하고, 천박사는 바로 그 길로 인배와 유경의 집으로 향한다. 영화는 유경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경의 사건을 쫓을수록 천박사는 이 일이 자신과 별개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밝고 유쾌해 보였던 그에게 슬픈 가족사가 숨겨져 있었으니, 천박사는 바로 대대로 마을을 지켜 온 당주집 장손이었다. 게다가 그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무당이었지만, 강력한 악귀를 봉인하다 원인 모를 죽음에 이르렀다. 이후 천박사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홀로 그 악귀를 찾고 있었다.

추석 연휴를 노린 영화에 걸맞게 가족이 함께 보기 좋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천박사 혼자 극을 이끌어 가기는 다소 부족하다. 특히 오컬트 영화를 지향하고 있기에 악의 요소도 뚜렷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만약 악귀 ‘범천’이 없었다면 영화는 천박사 매력에만 치우친 영화가 됐을지 모른다. 범천은 천박사의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쳐놓은 결계에 갇혀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신세다. 그렇다고 범천은 가만히 묶여 있지 않다.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아 영력을 모으며, 강력한 악귀로 진화하기 위해 유경을 필사적으로 뒤쫓는 면모를 보인다.

범천은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영력을 쓰는 악귀다. 신출귀몰하고 위협적인 능력으로 ‘천박사’ 일행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특히 그가 부리는 악에 씐 사람들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해 마치 한 편의 좀비물을 보는 것도 같다. 이처럼 영화는 신점과 무당, 귀신을 가두는 부적인 ‘설경’부터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칠성검, 귀신을 감지하는 놋쇠방울, 악귀를 뒤흔드는 북소리 등 한국적 설정을 가미한 오컬트와 액션, 코미디와 판타지, 미스터리물까지 장르를 넘나들고 있어 무겁지 않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오락물이다.

웹툰 ‘빙의’가 원작인 ‘천박사’는 연출보다는 다른 데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된 강동원의 매력, 강력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허준호, 최근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시선을 모으는 김종수가 눈길을 끈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동휘와 이솜, 짧지만 굵은 연기로 웃음을 주는 박정민까지. ‘기생충’을 본 관객이라면 단번에 웃음을 주는 배우들 조합도 볼 수 있다. 그들의 연기 앙상블이 더해져 한층 신명 나는 굿판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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