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수도권-비수도권 갈등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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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수도권 인구 절반 넘어서 계속 팽창
표의 등가성 원리 국회의원도 증가
각 정당 수도권 민심 확보에 사활

지역 예산은 경제성 잣대로 외면
지역소멸·저출생 악순환 불가피
국가균형발전 없이 한국 미래 없다

얼마 전 광주의 한 언론인을 만나 박지원 전 의원의 총선 출마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박 전 의원의 나이는 올해 81세. 나이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3김 시대부터 정치를 해 온 ‘올드보이’의 귀환에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광주·전남 지역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박 전 의원의 출마가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지역을 대표해 목소리 내 줄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광주의 현역의원 군은 송갑석 의원(서구갑)을 제외하면 모두가 초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에서는 그들이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중앙 정치에 휩쓸리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초선 무능론’이 팔순 넘은 원로 정치인을 다시 소환하게 한 것이다.

사실 국회에서 지역 이슈가 실종된 건 의원 개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구조적 문제도 크다. 수도권 비중 자체가 커졌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3:1이었던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2:1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의 인구수가 가장 적은 선거구 인구수의 2배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침 각종 뉴타운과 신도시가 완성되며 수도권 인구가 증가했다. 동탄신도시로 유명한 경기도 화성시는 2010년 50만 명을 넘긴 인구가 올해 100만 명 진입을 바라보는 상황이 됐을 정도다. 인구가 늘어나니 자연스레 의석도 증가 압력을 받는다. 지역구 전체 의석이 늘지 않는 한 수도권 의석이 증가하는 만큼 비수도권 의석은 축소된다. 표의 등가성이라는 원리 앞에 지역 정치인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기에 앞서 자기 지역의 대리인을 자처한다. 그들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해 주길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본인 지역구를 챙기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정부가 수도권에 소재한 공공기관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라치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결사반대에 나선다. 지역에 철도·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에는 예산 낭비 프레임이 따라붙는다. 부실한 준비로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새만금 잼버리 사태 이후 기다렸다는 듯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산 낭비 목소리가 제기된 게 그런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물론 예산은 필요한 곳에 알뜰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지역 예산을 경제성과 효율성의 잣대로만 측정한다면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서고 덩달아 무당층의 중요성도 증가하면서 각 정당은 수도권 민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럴수록 비수도권 지역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런 상황에서 비수도권 정책에 대한 수도권의 견제, 그에 따른 대립의 심화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조귀동 작가의 신작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사회가 직면할 갈등을 이탈리아의 사례에 비추어 예견한다. 그는 이탈리아 우파 포퓰리즘 정당 북부동맹(LN)의 성공 배경에는 지역 간 격차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지역민들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탈리아의 산업은 밀라노가 있는 롬바르디아를 비롯한 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남부는 산업 배치에서 소외돼 있고 그만큼 재정자립도도 낮다. 일례로 북부동맹이 성장하던 1992년, 이탈리아의 주 가운데 세금과 사회보장료를 지출보다 더 거둔 곳은 롬바르디아와 라치오(로마)를 포함한 네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지역은 이들이 거둔 세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북부에서는 노동자와 중하위 계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우리 세금을 다른 지역과 나눠 쓰느냐는 것이다. 북부동맹은 이런 분노를 잘 조직해 1987년 1석에 불과했던 의석을 7년 만에 118석으로 늘렸다.

수도권으로 사람과 기업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소위 ‘잘나가는’ 이들 지역은 많은 인구와 넉넉한 세수를 바탕으로 중앙 정치에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비수도권 지역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지금까지의 지역 갈등이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이었다면 앞으로의 지역 갈등은 경제력 차이에 기반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우리 정치는 수도권 표심이라는 커다란 이익을 버리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선택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국가균형발전을 이루지 못하고서는 지역소멸과 저출산·고령화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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