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망 보험금’ 54년 전 떠난 친모 사건, 결국 대법원으로
사망보험금 2억 3000만원, 친모 소유 인정
“딸에게 1억은 줘라” 법원 중재안 친모 거부
딸 “연락 한 번 없다가…엄마도, 사람도 아냐”
국회 계류 ‘구하라법’ 통과 촉구 여론 재조명
54년간 제대로 된 연락 한 번 없다가 아들이 죽자 사망 보험금을 챙기기 위해 나타난 80대 친모 사건이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양육 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모가 자식의 재산 상속을 금지하도록 하는 일명 ‘구하라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 김종안 씨의 친누나인 김종선(61) 씨는 최근 부산고법2-1부(부장판사 김민기)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지난 8월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친모의 손을 들어줬다. 김종안 씨의 사망 보험금 2억 3776만 4430원을 친모의 소유로 인정한 것이다.
앞서 재판부는 사망 보험금 중 약 40% 정도의 돈을 딸과 나누고 소송을 마무리 짓자며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친모 측이 법원의 중재안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며 이를 거절해 무산됐다.
성실한 선원이었던 김종안 씨는 2021년 1월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다 폭풍우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이에 김 씨 앞으로 사망 보험금 2억 3000여만 원과 선박회사의 합의금 5000만 원 등 3억 원가량의 보상금이 나왔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나타난 그의 친모는 민법의 상속 규정에 따라 보상금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사라진 지 54년 만이었다. 그러나 1심을 맡았던 부산지법은 현행 민법에 의거해 ‘아들의 사망 보험금 2억 3000여만 원을 지급해달라’는 친모의 청구가 이유 있다며 인용 판결을 내렸다.
김종선 씨는 “친모는 동생이 두 살 무렵 떠난 후 한 번도 우리 삼남매를 찾아오지 않았고 따뜻한 밥 한 그릇도 해준 적 없다. 그를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다”며 “막냇동생이 죽자 갑자기 나타나 거액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생모는 동생의 통장에 있던 1억 원의 현금과 동생이 살던 집도 모두 자신의 소유로 돌려놓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2심 직후 김 씨는 “두 살 때 자식을 버린 친모를 부모로 인정해주는 법이 어디에 있나.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느냐”며 “동생의 사망 보험금을 친모에게 주느니, 국가에서 전액 환수해 갔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종선 씨는 친모와 김종안 씨 등이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진과 문자 기록 등을 볼 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며 “아이들을 양육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과 보험금을 둘러싼 분쟁 악화의 원인이 오로지 친모에게만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친모가 얻는 이익보다 자녀들이 입을 손해가 현저히 크다고 해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를 권리남용이라 할 수는 없다”며 “김종안 씨가 사망 전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또한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씨의 판례로 다시 한 번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구하라법은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2021년 관련 법안을 내놨고 법무부도 작년 6월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법안의 취지는 같으나 상속 금지의 방식이 다르다. 서 의원 법안의 경우 결격사유를 충족하면 부모의 상속 자격이 자동 박탈되지만, 법무부 안은 양육 의무 위반 여부 등을 법원에서 다퉈야 한다. 양육 의무 위반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김 씨와 같은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의무를 중요시하는 서구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관련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종선 씨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두 번 고통받고 있다. 법이 저희 같은 자식들에게는 너무나도 부당하다”며 “구하라법에 관심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