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부산다움의 거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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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최근에 ‘개입자’ 혹은 ‘침입자’로 번역되고 있는 영화 ‘The Intruder’를 다시 보았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선박회사 대표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던 영화. 클레르 드니 감독은 이 영화 촬영 이전에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뤽 낭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영화 속에 부산을 등장시킨다. 몸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며 자기를 찾아 여행하는 주인공 루이 트레버가 남태평양으로 가기에 앞서 부산에 와서 선박을 수주하는 사건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표 나게 주목한 바는 주인공이 코모도 호텔로 짐작되는 지점에서 부산을 조망한 풍경과 그가 수주한 선박의 진수 장면이다. 적어도 감독은 부산항이야말로 부산의 신체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영화·소설 속 등장하는 배경

부산항 배후 시가지 공통점

지역학자 주경업 마지막까지

연안 항구·포구 조사에 매진

‘삼포지향’ 표현으론 부족

바다와 공존 도시 구상해야

소설가 박솔뫼가 부산을 무대로 소설을 쓰기 전에 들른 곳도 코모도 호텔이다. 2017년 겨울 이 호텔을 오르내리며 구상하여 쓴 소설이 〈인터내셔널의 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중구의 삼 대 건축물로 부산 타워, 코모도 호텔, 민주공원의 탑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가 초량 일대를 배회하면서 정작 가장 관심을 기울인 장소는 국제터미널이 있는 부산항이다. 앞선 영화에서도 HANJIN이라 새겨진 건물이 등장하였듯이 이 소설에도 이 로고가 새겨진 건축물과 화물 선박 그리고 일본을 오가는 여객선이 이야기된다.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외부의 시각에서 부산항을 가운데 두고서 배후에 들어선 시가와 주택지가 부산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 최근 김숨이 공들여 쓴 장편 〈잃어버린 사람들〉을 더할 수 있다. 비록 1947년 9월 16일 하루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부산으로 모여든, 이름을 지녔거나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인물들의 생생한 삶의 행로가 서쪽 다대포에서 동쪽 송정에 이르기까지 6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서술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중심 무대는 부산항 일대이다.

문학비평가이자 문화 연구를 학문으로 창시한 영국의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만년에 자기가 태어나 살았던 웨일스를 연구하는 데 투신하였다. 소위 웨일스성(Welshness)을 서술하는 일이 그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우리 고장의 지역학자인 주경업 선생도 마지막으로 연안의 항구와 포구를 조사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그도 연안과 바다가 부산을 지시하는 공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 부산다움을 찾아온 그가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묻는다. 부산다움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부산의 정체성 혹은 부산성(busanness)으로 불리면서 논의가 거듭 반복되어 왔으나 여전히 만족스러운 토론의 장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나는 동어반복으로 등장하는 ‘삼포지향’이라는 말에 불만을 지닌다. 그 사전적 의미는 주지하듯이 산과 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고장을 뜻한다.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여 부산다움을 말하기에 부족한 말이다. 한편으로 내륙의 시각을 지녔고 다른 한편으로 부산이 바다의 도시임을 약화한다.

최근 하동군이 ‘삼포지향’을 표방하였다. 연안에 세워진 우리나라의 도시 가운데 삼포지향이 아닌 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지리산과 섬진강을 꼈으니 어울린다고 하겠다. 이와 달리 산록을 도시에 내어놓은 부산은 강과 산과 바다의 조화를 말하기에 앞서 바다가 핵심인 도시임이 분명하다. 혹자는 삼포지향의 상실을 말하기도 한다. 산과 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훼손되고 파괴되었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부산과 격절된 감각은 소외의 표정에 다를 바 없다. 본디 부산의 원형이 있었다고 강변하며 사라진 장소와 풍경에 대한 눈먼 헌사로 지역 사랑을 대신한다. 삼포지향이 이처럼 덧없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이라면 지금-여기의 위치에서 폐기해도 무방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만큼 이 말속에는 반근대주의가 내장되어 있다.

부산의 강은 도시를 감싸고 있지 않다. 바다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뭍 속의 바다에 가깝다. 산은 도시의 일부이며 다른 지역과 경계일 따름이다. 그 허다한 산들을 부산의 특성을 말하기 위해 소환하는 일은 어느 정도 억지에 가깝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 물의 도시이다. 그러므로 하천과 바다는 구분되지 않는다. 부산을 대표하는 장소는 북항과 남항이고 연안의 항구와 포구들이다. 바다를 향한 부산의 욕동은 연안을 넘어서 해협으로, 해역으로, 대양으로 나아간다. 부산다움은 연안과 해역 나아가서 대양을 포함하는 데서 다시 논의될 수 있다. 이러한 토론의 과정에서 바다와 공존하는 도시주의(블루 어바니즘)에 바탕한 미래 도시 부산의 그랜드 디자인 구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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