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북미 선주민 예술가의 날카로운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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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힙 오브 버즈 ‘학살과 민주주의 Ⅱ’

에드가 힙 오브 버즈(1954~)는 아메리카 선주민 예술가이자 국제 무대에서 활동 중인 현대 미술가이다. 그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위치한 샤이넨 부족의 보호구역에 거주하며 교육자, 사회운동가로 일하고 있다. 현대미술가로서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해외 유수의 기관에 작품을 발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롱아일랜드 도심 속 시민 농구장 코트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는 회화, 설치, 조각, 개념미술, 공공미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아메리카 선주민이 겪은 잔혹한 폭력의 역사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 선주민의 삶과 치유에 관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선주민의 절멸되어 가는 정신 문화와 이를 방관·억압하는 미국 정치 세력을 비판하고, 정치적 견해를 작품에 담아 공론화시키는 형식의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작품 중 ‘학살과 민주주의’는 핏빛과 같이 선명한 빨간 바탕의 종이에 휘갈겨 적은 하얀 글씨가 돋보이는 프린팅이다. 이 작품은 그의 주요 작업 중 하나인 ‘고스트 프린트’ 시리즈에 속한다. ‘고스트 프린트’란 잉크를 눌러 찍어내는 프레스 기법을 이용한다. 초판 인쇄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텍스트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찍어 낼수록 흐릿해지는 현상에 착안하여 고안한 작품이다.

작가는 인쇄의 선명함과 흐릿함이란 대비를 이용해 종이를 배열하고, 이를 통해 북미 선주민이 처한 고립된 상황과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자 최초의 선명함을 지닌 사람들이 백인 이주민의 압제·폭력에 의해 보호구역에 거주하며 유령처럼 비치는 현실을 ‘고스트 프린트’에 빗댔다. 동시에 초판 인쇄 속 밝고 선명한 글자는 선주민이 본래 갖고 있는 뿌리, 전통, 강인함을 의미한다.

작가는 선명한 원색의 종이 위에 짧은 메시지를 적는데 이 언어들은 ‘날카로운 돌(sharp rocks)’ 즉, 화살촉이라 불린다. 빠르게 날아가 정확하게 꽂히는 화살처럼 날카롭게 다듬은 정치적 견해를 짧은 글귀로 적어 미국 정치 세력의 위선과 억압을 겨냥한다. 작품은 아메리카 선주민, 소외된 자, 사라져가는 뭇 생명을 대변하여 그들의 고통을 알리고 교묘히 감춰진 폭력을 드러내며 공론화한다. 그의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래하는 땅’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박한나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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