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금값 사과, 금빛 사과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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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김 씨. 지난 추석 하루 전날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사과 하나에 1만 원! 한 봉지도 아닌 한 알이 그랬다. “이런 미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김 씨만이 아니라 이번 추석 제수용품을 준비하면서 사과 가격에 놀란 사람이 많다. 다른 과일도 많이 올랐지만 사과는 특히 심했다. 소위 ‘금값’이 되다 보니 생산지에선 사과를 훔치려는 절도범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사과 가격 폭등은, 추석 대목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사과 수확량이 급감한 탓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밀양 얼음골 사과에서 그 징조를 읽을 수 있다. 밀양 얼음골은 경남에서 드물게 사과 재배가 가능한 곳이다.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서늘한 기후 덕분이다. 그런데 본격 수확을 한 달 정도 앞둔 요즘 이곳 사과 농가들은 망연자실해 있다. 사과 탄저병이 대대적으로 덮친 것이다. 원인은 이상기후다. 올여름 유난히 더웠던 데다 비까지 잦아 탄저병이 번지기에 좋은 조건이 된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최소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음골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의 사과 재배 한계선이 북상한다는 얘기는 오래됐는데, 농촌진흥청이 수치로 확인해 준 바 있다. 2010년대까지 사과 재배 ‘적합’ 지역이었던 경북과 전북이 이제는 재배 ‘가능’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2030년쯤에는 사과 최대 산지가 경북 청송·영주에서 강원도 정선·양구로 바뀐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2070년이 되면 강원도에서도 재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재배지가 사라지면 희귀 과일이 될 수밖에 없고, 희귀 과일은 비쌀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인 사과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관계 당국이 여러 대책을 구상 중인데, 노란 사과 보급이 그 하나다. 노란 사과로 각광받는 게 ‘골든볼’, 즉 금빛 사과다. 골든볼은 2017년 개발 후 보급된 지 겨우 3년 된 최신 품종이다. 흔한 빨간 사과는 착색 관리 등 품이 많이 들어가고 고온에도 약하다. 골든볼은 착색 작업이 필요 없고 여름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고온에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5년까지 대구 군위군에 골든볼 전문생산 단지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부디 성공해 이상기후로 사라질 위기를 맞은 우리 사과가 금빛 사과로 부활하길 간절히 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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