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장 해임… 234년 의회 역사상 처음 ‘대혼란’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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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 강경파 매카시 해임안 제출
민주 전원, 공화 8명 찬성해 가결
셧다운 피한 임시예산 처리 불만
예산안 협상 불가 미 정국 안갯속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주) 하원의장이 3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언론과 경찰에 둘러싸여 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주) 하원의장이 3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언론과 경찰에 둘러싸여 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권력 순위 3위인 케빈 매카시(공화당) 하원의장이 전격 해임됐다. 미국 의회 234년 역사에서 하원의장이 해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하원은 3일(현지 시간) 전체 회의를 열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해임 결의안을 가결 처리했다.

‘반란’을 주도한 공화당의 강경파 의원 8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당론으로 ‘해임 찬성’ 입장을 정한 민주당 의원 전원이 가세했다.

앞서 공화당 강경파인 맷 게이츠 하원의원은 매카시 의장이 추진한 임시예산안 처리에 반발해 전날 매카시 의장 해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매카시 의장은 이에 “해볼 테면 해보라”는 자신만만한 반응을 보이며, 다음 날 곧바로 표결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일부가 매카시 의장을 도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매카시 의장과 민주당은 모두 주고받을 것이 없다며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특히 민주당은 매카시 의장이 최근 추진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 등을 이유로 매카시 의장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해임 찬성 당론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의회는 회계연도가 시작하는 10월 1일 이전 연방 정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가 대폭적인 예산 삭감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논의는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왔다. 공화당 강경파는 2024회계연도 정부 지출을 2022년 수준인 1조 4700억 달러로 줄이지 않는 한 어떤 예산안 처리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셧다운(연방정부 기능 마비)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매카시 의장이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제외한 45일짜리 임시 예산 처리에 나서며 일단 정부 셧다운 상황은 피해 갔다.

하지만, 같은 당 강경파 의원들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며 해임 결의안 추진에 나섰고, 결국 매카시 전 의장은 하원에서 처음으로 불신임 당한 하원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올해 초 하원의장 선거 당시에도 매카시 의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에도 불구, 당내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가 ‘몽니’를 부리면서 15번의 투표 끝에 간신히 하원 의사봉을 잡았다. 당시 매카시 전 의장은 하원의장 해임 결의안 제출 기준을 1명으로 낮추는 등의 양보 끝에 가까스로 하원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초유의 해임 사태로 인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물론, 하원 전체가 당분간 예측할 수 없는 대혼란 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공화당 패트릭 맥헨리 금융위원장이 임시 하원의장을 맡게 됐으나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하원 운영위원장으로 매카시 의장의 측근인 공화당 톰 콜 의원은 “해임 결의안에 찬성한 사람들을 포함해 누구도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그들은 대안도 없으며, 이는 단순히 혼란을 위한 투표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일단 하원의장 자리가 공석이 된 만큼 후임 선출이 시급하지만, 다수당인 공화당 내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데에는 대체적 의견이 일치하는 상황이다.

내달 중순이면 임시 예산 기한이 종료하는 만큼 내년 예산안 협상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하원 지도부 공백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정상적인 협상을 기대할 수 없어 또 다른 셧다운 사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이번 하원의장 해임 사태로 인해 공화당에서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진 데다, 여당인 민주당과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간 신뢰 기반도 무너짐에 따라 의회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게 돼 미국 정국이 안갯속에 빠졌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하원에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이 제출된 것은 조지프 캐넌(1910년)·존 베이너(2015년) 하원의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베이너 전 의장의 경우 해임 결의안 제출 두 달 뒤 전격 사임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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