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진보 아닌 회복력의 시대… ‘물’ 중심의 새로운 매뉴얼이 필요” [미리 보는 WOF]
기조 연설자 제러미 리프킨 인터뷰
제17회 세계해양포럼(WOF)이 오는 24∼26일 사흘 동안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다. WOF은 해양수산부, 부산시, 부산일보사가 공동 주최하고 (사)한국해양산업협회가 주관한다. WOF 기획위원회는 앞서 회의를 통해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기술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올해 포럼 대주제를 ‘블루테크노미(Bluetechnomy)’ 로 확정했다. 이에 주요 강연자 인터뷰를 ‘미리 보는 WOF 명강’에서 소개한다. 처음으로 소개할 강연자는 〈노동의 종말〉 등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이다. WOF는 지난달 28일 리프킨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진보가 힘을 잃은 회복력 시대
“지금은 진보가 아닌 회복력의 시대다. 지구 온난화가 우리가 만든 시스템과 인프라, 전력망 등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있다.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한 시기다.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리프킨은 이 시대를 ‘회복력 시대’라고 정의한다.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대량절멸(대멸종)이 지금까지 5번 있었는데, 지금은 6번째 대멸종기를 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위 진보의 시대인 산업시대에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가 극심한 홍수와 가뭄 같은 전 세계의 기후변화로 돌아오면서 인류가 절멸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우리가 알던 지구의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이상기온 등 기후변화의 핵심에는 ‘물’이 있다. 지구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증발한 수분은 구름에 모인다. 그 결과 통제 불능의 극심한 수해와 폭설이 발생한다. 홍수와 가뭄, 이상 고온과 산불 같은 이상기후도 물이 지구상에 미치는 영향의 결과다.
그는 서구의 세계관이 상황을 더욱 부추겼다고 본다. “서구는 세계를 구조와 형태와 사물로 본다. 객관적 분석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알아내고 부를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보 시대의 가정과 원칙, 전제가 인류가 처한 지금 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우리는 우리를 절멸로 몰아넣은 진보 시대, 산업시대, 화석연료 시대의 원칙과 전제, 아이디어, 매뉴얼을 가지고 그 시대를 끝내려고 한다”면서 “새로운 매뉴얼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물’에 초점 새로운 매뉴얼 필요
리프킨은 새로운 매뉴얼의 초점은 ‘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이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고, 지구의 미래 또한 결정하지만, 과거의 인프라들은 물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를 들어 전 세계 건물은 ‘물’의 영향을 고려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새로 건설돼야 한다.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320조 달러다”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개의 새로운 기업들과 수억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물을 중심에 둔 매뉴얼을 만들 때는 ‘회복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물의 흐름이 홍수와 폭염, 가뭄과 산불, 대기와 하천을 결정한다.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물과 우리를 격리하기보다 물이 움직이는 대로 적응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어 물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리프킨은 “우리는 가장 적응력이 강한 포유류다.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세계해양포럼 참가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라면서 “인류는 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지구의 인프라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매뉴얼의 부재는 많은 기업과 국가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리프킨은 “정치적 의지들이 화석연료 에너지, 옛 법령, 옛 규제, 옛 기준, 구시대의 방식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세대, 산업과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특히 자연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아시아권은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적 DNA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기회를 잡아야
리프킨은 동양의 문화적 배경이 전 세계가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봤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내가 너에게 지구상의 생명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너는 동물과 식물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라’라고 말한다. 이 사명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면서 결국 산업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게 리프킨의 분석이다.
하지만 동양의 문화는 다르다. 그는 “아시아 종교에는 우리가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철학이 있다.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라며 “현대인들은 이러한 믿음에서 다소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문화적 DNA에는 남아 있다”고 보았다.
특히 리프킨은 특히 한국이 더욱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기술력을 갖고 있어 지금 시대는 한국에 주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에게 부족한 점으로는 ‘정치적 의지’와 ‘중소기업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한국에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다. 중소기업이 보다 기민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미래다. 살아남는 대기업들은 전 세계 중소기업들과 협력하는 통합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며 “첨단 중소기업들이 협력하며 전 세계 기업들과 함께 일하며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일 문화와 단일 생태계는 무너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리프킨은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해양문제를 다루는 WOF가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하는 국제대회로 확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기조연설을 수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을 다루는 것은 우리 인류와 생명을 위한 일이다”라며 “바다를 인접하고 있는 한국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독려해 WOF 동참을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누구
올해로 17회를 맞는 세계해양포럼(WOF)에 기조연사로 나서는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이다. 경제와 노동, 사회, 환경 등에 미치는 과학기술의 변화와 영향을 집중적으로 논한다.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과 같은 종말 시리즈와 〈공감의 시대〉 〈제3차 산업혁명〉 〈수소혁명〉 등을 합쳐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최고경영자과정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지금은 자신이 설립한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을 맡아 저술과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