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영화상 2023] 여우주연상 김서형 “지쳐 있던 연기 인생 다시 지피는 변곡점 될 것 같아요”(종합)
“지치지 말고 달려가라고 주신 선물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배우로서도 ‘제2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고, 롱런하기 위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지쳐 있던 저를 다시 지피는 계기가 된 상이어서 더없이 기쁩니다. 저한테도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비닐하우스’(감독 이솔희)에서 돌봄 간호인 ‘문정’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친 김서형이 2023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2014)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비닐하우스’가 첫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다. 부일영화상에 앞서 시상식이 열린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도 같은 상을 받고 울음을 터트린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상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영화는 두드려도 저한테 손길이 닿지 않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약간 겉돌기도 했고요. 가끔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긴 했지만, 배우로선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비닐하우스’가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니 정말 ‘효자’가 된 거잖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제대로 알아보긴 했구나 싶었어요.”
영화배우의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은 이처럼 중요하다. 김서형 배우도 이 점에 대해선 거듭 강조했다.
“모든 배우가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좋은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스카이캐슬’이든 ‘마인’이든 똑같은 행보예요. 대본이 좋아서 올인하는 겁니다. ‘비닐하우스’도 그 연장선에서 만난 거죠. 감독이 신인이라든지 저예산 영화라는 위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시나리오를 한두 번 읽으면 연기 톤이 서버려요. 이미 혼자서 영화를 찍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선택한 영화는 열심히 찍을 거고, 그다음 평가는 제 몫이 아닌 거죠.”
물론 ‘비닐하우스’ 출연을 단박에 결정한 건 아니었다.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이 작품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엔 망설였어요. 이걸(촬영) 한 달 안에 끝내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거든요. 제가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아니라, 제가 잘 아는 감정이기도 해서 꼭 제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서요. 저도 상경해서 옥탑방부터 생활했으니까요. 그래서 할 수 있어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완강히 거절했어요.”
그런데도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캐스팅 디렉터의 끈질긴 설득과 이솔희 감독 덕분이었다. 이 감독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소통도 잘 됐고, 정말 재능이 많은 감독이란 것도 알게 됐다. 결과적이지만 이 감독이 영화를 찍는 내내 농담처럼 내뱉은 “저는 선배님께(김서형) 이 작품으로 꼭 여우주연상을 타게 해 드리고 싶어요”도 이뤄졌다.
“돌보는 일 자체가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어요.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 중 하나일 테고, 또 생겨서는 안 되는 사건이지만 이게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갔어요. 현장에서는 힘들었지만, 영화는 웃으면서 찍었습니다. 젊은 감독과 열정적인 작업을 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대사 중에도 나오지만 “삶을 만들어 가는 건 선택과 결정”이라더니 그의 연기 인생에서도 비닐하우스는 남다른 변곡점이 될 것 같다.
“‘비닐하우스’는 2년 전 촬영한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오히려 그 상이라는 것 때문에 저를 연기적으로 한 번 더 되새김질하게 되는 거죠. 사실은 ‘스카이캐슬’ 이후로도 쉼 없이 달렸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지칠 수 있고요. 가만 생각해 보면 30년 이상 이 일을 해 온 것만 봐도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더욱더 신중해야죠. 오히려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저 보고 ‘제2의 전성기’라고 하지만 저한테는 변곡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상영되면서 CGV상·왓챠상·오로라미디어상 등 3관왕에 올랐지만, 개봉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다 보니 상영 기간도 짧았고요. 그런데도 1만 명 이상 관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히려 이렇게 상을 받으면서 사람들 관심이 있을 때 재개봉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김서형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몇 갠가의 시나리오와 대본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영화 쪽으로 더 기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두루두루 열어 놓고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지천명, 연기 인생 30년을 지나는 김서형의 미래는 다시 꿈틀꿈틀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