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3] “고 윤정희, 촬영 당시 알츠하이머 증세…엄청난 노력 들여 작품 임했다”
스페셜 토크 영화 ‘시’
이창동 감독·남편 백건우 참석
“캐릭터, 아내와 닮은 점 많아”
엔딩 크레딧 후 객석 추모 갈채
오랜 기간 이어진 투병 생활 끝에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고 윤정희 배우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부산국제영화제에 마련됐다. 영화 ‘시’로 그녀와 함께 호흡했던 이창동 감독과 윤 배우의 남편은 필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된 그녀의 빈 자리를 아쉬워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CGV센텀시티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 시’ 행사에는 고 윤정희 배우를 그리워하는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대담에 앞서 상영된 영화 ‘시’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에서는 윤 배우를 추모하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윤 배우를 추억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이창동 감독과 윤 배우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참석했다.
윤 배우의 마지막 작품인 영화 ‘시’는 윤 배우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창동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윤정희 배우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뒀다면서 알츠하이머를 가진 미자 역을 맡은 윤 배우가 실제 알츠하이머로 투병 생활을 했다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운명적이라고 회상했다. 이창동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과거 주로 사용된 이름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의 의미를 담아 주인공 이름을 미자라고 결정했다. 윤정희 씨의 본명이 손미자라는 점에서 윤 선생과 이 영화는 운명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윤 배우가 촬영 당시부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는 것을 목격했다”며 “윤 배우는 촬영을 이어갈 때마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 촬영에 임했고 다행히 촬영 과정 중 증상이 좀 나아져 본인이 성취감 같은 것도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윤 배우의 남편 백건우 씨는 그동안 관객들이 연기자 윤정희를 사랑해 준 점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백 씨는 “오랫동안 여배우 윤정희를 사랑해 주신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면서 “영화 촬영 당시 아내가 촬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많이 얘기해줬고, 영화 속 캐릭터가 아내와 닮은 점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윤 배우는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로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 1월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6년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윤 배우는 50년 이상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그녀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지난 4일 열린 개막식에서 한국영화공로상을 수여했다. 한국영화공로상은 한국 영화를 국제 영화계에 널리 소개하는 데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윤 배우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 씨는 공로상을 수상하며 “어머니가 10여 년을 중병과 싸워야 했지만 여러분들의 애정이 멀리 있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했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백 씨는 개막식에서 관객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