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축제 열기 달아오른 부일영화상·부산영화제
위기 속에도 한국 영화 희망 보여 줘
‘영화 도시 부산’ 비상하는 계기 되길
부산의 가을이 영화로 무르익는다. 10월의 찬 바람에도 축제의 열기는 오히려 더 후끈 달아올랐다. 5일 시그니엘부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32회 부일영화상 시상식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시상식장은 영화 관계자는 물론 전국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꽉 찼고, 이들은 수상작이 발표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로 환호했다. 이런 열기는 전날 영화의전당에서 치러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도 이미 체감됐다. 야외극장의 5000여 객석을 다 채운 것도 모자라 인근 도로에까지 인파가 넘쳐 경찰은 통제에 애를 먹어야 했다. 부산 영화의 힘을 새삼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었다.
부일영화상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앞서 오늘날 ‘영화의 도시 부산’을 이끌어 낸 산파이자 버팀목이었다. 1958년 국내 최초 영화상으로 출범한 이후 한때 중단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영화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에는 까다로우면서도 엄정한 부일영화상의 심사 체계가 큰 영향을 끼쳤다. 대중성보다는 작품 자체의 예술성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부일영화상의 정체성을 국내외 영화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부일영화상은 국내 영화상의 바로미터인 동시에 한국 영화가 지금껏 이룬 성취의 발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실은 올해 부일영화상 수상작들의 면면에서도 확인된다. 부일영화상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최우수작품상으로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선정됐는데,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사유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감독상은 일반의 예상을 벗어나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에게 주어졌다.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이른바 ‘다음 소희 방지법’을 이끌어 내는 등 영화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보여 준 점이 호평을 받았다. 모두가 부일영화상 특유의 꼿꼿한 심사 준거를 여실히 증명하는 영화들이라 하겠다.
지금 한국 영화가 위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주현 씨네21 편집장은 이번 부일영화상 심사평을 통해 “한국 영화에서 희망을 본다”고 밝혔다.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와 빼어난 성취를 이룬 작품들을 심사 과정을 통해 접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일영화상은 영화인들에게 기회와 용기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우리 영화가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돼 왔다. 충분히 자부할 만한 일이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부일영화상과 부산국제영화제가 쌍두마차가 돼 ‘영화의 도시 부산’을 더욱 비상시켜야 한다. 영화인들의 각고의 노력과 시민들의 열화 같은 성원이 그래서 더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