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10월엔 비엔날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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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가을에 펼쳐지는 동시대 미술의 향연
공예·건축·사진·수묵화 등 장르도 다양
예술과 사회적 이슈 접점 경험할 기회

동시대 미술 현장에 관심을 둔 분들에게 10월은 완연해진 가을을 만끽하며 전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행사들을 둘러볼 좋은 기회다. 무려 아홉 개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9월 1일 동시에 개막했고, 이어 같은 달 7일 광주디자인비엔날레, 19일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21일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2일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으며, 10월 14일부터 부산 바다미술제가 시작된다.

올해 13회를 맞는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라는 주제로, 10월 15일까지 청주 문화제조창 등에서 진행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의 몸과 자연이 맺고 있는 직접적 관계를 매 순간 확인하면서 작업해 나가는 공예가의 방식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진화하며 만들어 내는 사물들과 그들의 관계에 주목하고, 거기서 공예의 특별한 힘을 발견하고자 했다. 특히 소통, 회복, 포용이라는 공예의 가치를 실현하는 작품들을 통해 자연과 노동, 예술적 생산이 일치하는 공예의 새로운 창의성을 조명한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과밀화 도시인 서울의 ‘도시건축’을 주제로 친환경 도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서울을 무대로 세계 도시의 현안 및 그 대안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은 과거로부터 풍수와 자연을 존중하는 환경친화적 도시였지만 지난 100년간 지나친 개발로 수많은 훼손을 겪었다. 4회째를 맞은 올해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 서울의 100년 후를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땅에 서린 형상, 생태·문화적 관계들을 살피고 ‘땅의 건축’에 담긴 상호의존적 관계를 고찰한다.

‘다시, 사진으로! 사진의 영원한 힘’을 주제로 한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11월 5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첨단 이미지 기술 발전으로 약화된 것처럼 인식되는 사진 본래의 고유성, 그 예술적인 힘과 에너지를 재발견하는 데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비엔날레는 통상 최근 유행하는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많은 비엔날레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제3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수묵화의 본향 전남 일원에서 ‘물드는 산, 멈춰선 물-숭고한 조화 속에서’를 주제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서의 수묵의 경쟁력과 대중적인 확장 가능성을 타진한다. 10월 31일까지 ‘수묵의 다변화, 자원화, 국제화’를 목표로 동양화뿐 아니라 서양화, 조각, 설치 미술, 미디어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먹물이 풀어내는 수묵의 세계를 만나 볼 수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11월 1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다. 이번 제12회 비엔날레는 현재 세계의 풍경을 구성하는 사회·역사적 배경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통해 서구 중심적 세계관 밖에 존재하는 네트워크, 이야기, 정체성, 언어 등을 소개한다. 오늘날의 전 지구적인 상황, 즉 국가와 지역을 초월하고 고정된 시스템을 거스르는 동시대적 변화에 주목한다. ‘이것 역시 지도’라는 주제는 ‘동시대의 이동과 움직임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세계 지도’를 의미한다.

국내 많은 비엔날레들이 여성, 소수자, 기후, 재난, 난민 등 유행하는 거대 담론 주제들을 다루고 어디서나 유사한 관 주도의 행사들로 그 본연의 가치를 잃어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예전 같은 저력을 느끼기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비엔날레보다 유명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미술 시장인 아트페어에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다면 비엔날레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 현장의 최전선이자, 예술과 사회·정치·역사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예술은 지금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술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같은 논쟁적인 질문들에 관하여 심도 있게 탐색하는 자리다. 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끈 도시들은 지역의 역사, 시대적 이슈 등을 관통하는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를 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작품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국제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아 왔다. 가장 지역적인 것을 통해 전 세계적인 공감과 확산을 이끌어낸다는 글로컬 전략이 힘을 발휘하는 현장이 바로 국제 비엔날레 행사다. 통상적으로 미술은 사회 현상을 사후적으로 반영하고 재현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비엔날레에서만큼은 오히려 미술이 사회적 이슈들을 생성하고 적극적으로 주도하고자 해 왔다. 그래서 비엔날레의 성공은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그 주제와 작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논쟁에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단풍이 물드는 이 계절에 예술을 둘러싼 토론에 함께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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