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항저우의 명장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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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졌다. 2023년에 열리고 있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도 어느덧 종반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수많은 경기 가운데 혹시라도 놓쳤으면 아까운 장면 세 개를 골랐다. 고르고 나니 공통점은 모두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첫 번째가 우즈베키스탄 여자 기계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다. 1975년생이니 48세. 기계체조 선수로는 환갑을 넘어 팔순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참가한 올림픽만 8개 대회라니 입이 벌어진다. 이번 대회 예선을 5위로 통과해 지난달 28일 결선 무대에 출전한 그를 보고 중국 팬들은 ‘치우 마(엄마 추소비티나)’라고 외치며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그는 높은 연봉을 제안한 독일의 제의를 받아들여 2006년부터 6년간 독일 대표로 활약했다. 오로지 아들의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낫자 2013년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회복했다. 추소비티나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체조뿐이었다. 아들이 괜찮아지기 전까지 나는 늙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내년 파리 올림픽까지 뛴다니 참으로 대단한 선수다.

두 번째는 망명 여성들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배구 선수들이다. 이슬람 강경 수니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집권한 2021년 이후 아프간에서 여성은 스포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대회 개막 직전 탈레반 관계자는 외신에 “아프간 선수단은 133명 전원이 남성”이라고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아프간을 탈출한 여자 배구 선수들은 이란에서 훈련한 뒤 항저우에 입성했다. 전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경기장 안은 이들을 응원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하얀색 히잡을 두르고 뛰어오르는 아프간 여자 배구 선수들에게 ‘나는 천사들(Flying Angels)’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 번째는 지난달 30일에 열린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 장면이다. 한국의 장우진-전지희 조와 임종훈-신유빈 조가 준결승전에서 중국 대표팀에게 각각 패하면서 동메달 단상 위에 나란히 올랐다. 장우진이 전지희의 옷깃이 목에 걸린 메달에 접힌 것을 보고 무심코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 전광판에 등장하자 관중들은 함성을 터뜨리며 열광했다. 신유빈과 임종훈이 양 볼에 하트를 그리는 귀여운 세리머니에 이어 메달을 바로잡아 주는 모습까지 따라 해 큰 환호를 받았다. 중국인들은 한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에 자신들의 경직된 문화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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