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끈적한 인플레이션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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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랫동안 계속 상승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은 모든 나라의 적이다. 물가가 오르면 봉급쟁이 가정은 각종 지출비 증가로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국민 대다수인 서민의 생활이 힘들어지는 게다. 인플레이션은 물건값을 급격히 올려 자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화폐 가치도 떨어트려 저축 의욕을 꺾는다.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수도 있다.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경계해 다양한 물가안정 정책을 펼치는 이유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미국·중국 간 경제 패권 다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하고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만들어 낸 신조어가 쏟아져 암울한 고물가 세태를 반영한다. 곡물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폭등을 초래하는 애그(ag)플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세부적으로는 각각 우유와 설탕 가격 인상이 유제품, 식료품 등 일반 물가의 상승을 부채질하는 밀크(milk)플레이션과 슈거(sugar)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국내 서민층 가계를 울린다.

계란값이 크게 올라 다른 식품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에그(egg)플레이션, 햄버거 가격이 급등한 버그(burger)플레이션, 수산물 가격 인상이 소비자물가를 압박하는 피시(fish)플레이션, 종잇값과 책값이 오르는 북(book)플레이션도 있다. 돼지고기 소비가 많은 중국의 경우 피그(pig)플레이션 발생이 잦다. 또 슈링크(shrink)플레이션은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제품 용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보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미국에선 이 같은 기업의 이윤 확대를 위한 탐욕이 고물가를 불렀다는 의미에서 그리드(greed)플레이션이란 용어로 지적되기도 했다.

최근 발표된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는 5개월 만에 최고치인 3.7%나 올랐다. 한국은행의 목표치 2%보다 훨씬 높아 문제가 심각하다. 국제 유가와 추석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겹쳐서다. 이에 물가 상승률이 높은 곳에 끈적끈적하게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스티키(sticky)인플레이션(끈적한 고물가)이 우려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7일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석유류와 원자재 가격을 더 끌어올려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끈적한 인플레’라는 최악의 물가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고물가를 잡는 데 심혈을 기울일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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