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흔들리는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 위상 바로세워야
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전국 유일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인 울산지검이 유독 대기업의 노동자 사망 사건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지난 8월 나온 에쓰오일 온산공장 폭발사고에 대한 검찰 처분은 이런 의구심에 기름을 얹었다.
지난해 5월 노동자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대형 사고에도 회사의 대표이사(CEO)는 ‘안전보건에 관한 권한을 최고안전책임자(CSO)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바통을 받은 CSO는 ‘위험성 평가 절차나 매뉴얼 등을 마련했다’며 나란히 형사처벌을 모면한 것이다. 원·하청 직원 13명(법인 포함)만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또 해당 사건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 27일) 이후 6개월 이내에 발생해 이 법이 정한 ‘6개월마다 점검 의무’도 어기지 않았다고 봤다. 검찰이 회사 주장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되레 꼼꼼하게 감경 사유를 찾아줬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5월 울산지검이 한 중소기업 대표이사와 안전보건책임자를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재판에 넘긴 것과 정반대 결과다. 울산지검은 당시 언론에 배포한 문자풀을 통해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으로서 앞으로도 중대재해 사건에 대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때의 약속은 그저 수사 성과를 포장하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했던 걸까.
에쓰오일 사고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명백한 인재(人災)다. 검찰 역시 “공장 내 여러 부서와 하청업체 가운데 한 곳이라도 매뉴얼에 따라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안전 점검을 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엉터리나 다름없는 위험성 평가 절차가 기실 조직과 안전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과 연결된다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추론이다. 결과적으로 에쓰오일의 위험성 평가 절차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조직이 무슨 따로국밥도 아닌데 여기에 최고 경영진의 책임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노동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위험성 평가 절차 등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검찰의 더욱 면밀한 수사가 아쉬운 대목이다.
울산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업도시다. 그러나 ‘대한민국 산업수도’라는 화려한 별칭의 이면에는 위험을 외주화하고 노동자 안전을 도외시하는 기업의 비양심적 행태가 끊이지 않는다.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이 생긴 지 내년이면 10년째,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2018년부터 지난 8월 말까지 울산 국가산단에서 발생한 중대 사고는 33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전국 1위다.
대기업은 사회적 책임과 안전 경영을 외치면서도 정작 사고가 나면 전관을 앞세운 대형 로펌을 동원해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바쁘다. 이를 막아야 할 검찰이 되레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는 판국이니 대형 로펌들만 살판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논란도 많지만, 그 저변에는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열망이 담겨 있다. 산업안전 파수꾼으로서 울산지검에 주어진 시대적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서릿발 같은 수사로 입증해야 한다. 산업안전의 최전방, 울산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