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부산의 힘, 영화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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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세계적인 축제의 장 BIFF 성료
코로나19 사태 때 누릴 수 없었던
사람들과 체온 나누는 자리 실감

정부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예고
지역 경제·문화 가치 평가절하
국가 전체 발전에도 악영향 우려

4인 이상이 모일 수 없던 극한의 코로나 시절,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집밖에 나서면 온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휴대폰 속에서만 사는 로봇이 된 것 같았다. 야속한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과 다 함께 공간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잠시 빼앗아 갔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좀처럼 느끼기 힘든 나날이었다.

일상을 회복하면서 새삼스럽게 ‘아, 함께한다는 게 이런 거였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만약 누군가 그런 감정을 언제 가장 강하게 느꼈냐 묻는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였다고 답하고 싶다. 영화의전당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찬 사람들, 취소 표라도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부산 일대에 가득 찬 숙소, 식당, 바닷가…. 분명 이런 풍경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만끽하고 영화를 누리는 순간 말이다.


그때의 부산은 세계적인 축제의 장이었다. 대기 줄을 서다 우연히 말을 나누게 된 한 관객은, 영화제 동안 국내에서 상영되지 않는 국제 영화를 모두 관람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 역시 키르기스스탄 영화를 감상했고, 인도 출신 영화감독과 관객들 간의 오픈 토크에 참여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인도네시아 특별전’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 언어가 울려 퍼졌고, 세계 곳곳의 관객들이 모였다.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 세계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축제의 장, 그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관객들은 코로나 이전과 동일한 기쁨을 누렸는데, 안타깝게도 부산국제영화제 자체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영화제 예산 삭감 때문이다. 올해 초청 영화 수가 지난해 242편에서 209편으로 33편 줄었다. 그에 따라 관객 점유율도 16만 1145명에서 14만 2342명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24년에는 정부 지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 영화제를 지원하는 국내외 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의 내년 예산은 28억 원가량 삭감되었다. 올해 예산인 56여억 원의 절반가량인 셈이다. 올해 BIFF 예산 규모는 109억 원이었고, 그간 BIFF 측은 매년 국비 12억 8000만 원을 예산으로 지원받았다고 한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주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도 예산 삭감이 발표되어서 영화제 자체에 대한 전망이 더욱 어둡다.

뉴스로만 접할 때는 체감할 수 없던 것들이, 직접 영화제에 참여해 보니까 보이고 들렸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리고 참여한 관객 수는 비슷한데 영화 수가 줄었다는 것이 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예산이 더 삭감된다면 다양한 영화를 수용하고 발굴하는 영화 및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에 다녀온 관객으로서 지금이라도 영화 산업의 미래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다.

지역 영화제는 서울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한국 내 다양한 공간에서 개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영화를 감상할 뿐 아니라 영화제가 개최되는 지역을 관광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부가가치 창출의 효과가 크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에 많은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발 디딜 틈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이래 수십 년 동안 매년 수백억 원의 수익을 내며 지역의 경제 가치를 창출했다고 한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왔다.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이 부산에서 상영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대중성과 명성이 높아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행사다.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글로벌한 지역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행사이고, 앞으로도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 등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이로운 사업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계속 축소되는 것은 이해당사자인 영화 산업과 부산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화제에 얽힌 다양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예산 삭감을 반대하고 싶은 이유다.

영화제에 다녀올 때마다 유달리 인상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올해는 영화가 다 끝난 뒤에도 크레딧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비로소 영화관이 암전되었을 때 박수를 치며 자리를 정돈하던 관객들의 마음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마음이 영화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본다. 이렇게 지역 영화제의 축소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대한민국을 발전으로 이끌어 줄 위대한 축제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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