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특화거리’는 말뿐, 주차장만 남은 옛 구포개시장
주민 반대로 동물복지센터 무산
폐쇄 4년 넘었지만 주차장 활용
인근 상가에도 관련 점포 2곳뿐
주변 인프라 없어 입점 꺼린 탓
주민 설득·대안 마련에 소극적
지자체 의지 부족 비판 목소리
국내 3대 개시장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구포개시장이 폐쇄된 지 4년이 넘었지만, ‘반려동물 친화도시’를 조성하겠다는 부산시와 관할 구청의 계획은 주민 반대를 이유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 동물과 지역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조성과 시설 설립에 대한 대안 마련 등 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충분한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 앞 주차장. 이곳은 6·25 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구포가축시장이 있던 장소로, 4년 전 북구청과 구포가축시장 가축지회의 협약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시와 북구청은 구포개시장 폐쇄와 동시에 이곳을 반려동물 특화거리를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개시장 상점이 철거된 이후 임시 공영주차장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 지어진 구포시장공영주차장 1층 상가도 반려동물 관련 점포는 보기 힘들었다. 주차장 앞에는 반려동물 하나 보이지 않는 반려동물 놀이터만 휑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포개시장 일원 반려동물 복지 특화거리 조성 사업은 시와 지자체의 말뿐인 선언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시와 북구청은 구포개시장 폐업의 의미를 잇고자 이곳 부지 995㎡에 지상 4층 규모 예산 20억 원을 투입해 반려동물 입양과 교육센터 등이 포함된 서부산권 동물복지센터를 건립할 생각이었다. 동물 학대 온상지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살리면서 반려동물 친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동물복지센터 건립이 추진되자 인근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주민 설문 조사 결과 주민들은 구포개시장이 있던 자리에 휴게·편의시설이 들어서길 원하면서 동물복지센터 건립 사업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결국 시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인프라 사업’에 선정돼 받은 국비 6억 원마저 2021년 반납했고, 이후 새로운 계획도 없이 부지를 임시 주차장으로만 활용한 채 방치 중이다.
서부산권 동물복지센터 사업이 무산되자 구포시장공영주차장 1층에 입점했던 반려동물 관련 상가도 사라질 위기다. 구청은 지난해 준공된 구포시장공영주차장 1층 상가에 반려동물 관련 점포를 입점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전체 상가 17곳 중 반려동물 관련 점포는 2곳뿐이다. 주변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아 관련 업종도 입점을 꺼린 것이다. 구청의 지원책이 마땅치 않아 그나마 남아있는 점포 2곳도 운영을 계속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려동물 카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김경은(24) 씨는 “반려동물 관련 인프라가 없다 보니 반려인 인구 유입도 없어 사실상 일반 카페 손님으로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며 “반려동물 관련 업종을 이어갈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도 부족하다. 지자체에서 거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주민 설득 과정 등 지자체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동물복지센터가 들어서고 반려동물 친화도시로 거듭나면 외부인 유입도 많아지고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설명에 나섰지만 끝내 사업이 무산됐다”며 “동물과 지역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 방안도 내놓았는데 지자체와 구의회의 적극적인 주민 설득 과정이 없었고 결국 미완으로 사업이 끝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북구청은 구포개시장 일원 서부산권 동물복지센터 건립은 무산됐지만, 반려동물 친화도시를 위한 사업을 다각도로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청은 도심갈맷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화명 기찻길 숲속 산책로 일부 구간(1km)을 반려동물과 함께 걷기 좋은 보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북구청 관계자는 “반려동물 친화도시 조성 사업에 대해 완전히 손 놓지 않았다”며 “주민 반대를 극복하고 북구 내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