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대피 명령, 사실상 추방” 이스라엘 비난 여론 확산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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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자지구 점령 가능성
미 이어 서방 지도자들도 제지
“강제이주 명령은 국제법 위반”
‘제2의 나크바’ 비판 목소리 비등

16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지상작전을 예고하며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지상작전을 예고하며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11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로부터 밀어낸 이스라엘의 대피령이 사실상 추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폭주를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예고했다.

■서방 국가들도 네타냐후 만류 나서

미 CBS방송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도 가자지구를 재점령 하는 데 대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를 제지하고 나섰다.

더불어 서방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다고 해도 그 이후 어떻게 할지 중장기 계획이 아직 없어 인명 피해만 양산하고 가자지구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랭크 매켄지 전 미국 중부사령관은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모두에게 피바다가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예측 불가능한 시가전에 빠져들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미국 등 주요국이나 관련국 외교적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서방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이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해 이스라엘 정부 고위 인사들과 비공개적으로 접촉하며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와 이들의 대피, 인도주의적 지원책 접근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무력 충돌 초반 분쟁 확대를 자제해 달라는 목소리를 냈던 아랍권은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도 일제히 공격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등지의 아랍권 국가들로 구성된 아랍연맹(AU)은 이날 아프리카 전체 55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 아프리카연합(AL)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늦기 전에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두 기구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두고 “전례 없는 규모의 대량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상전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두고 비교적 중립적 태도를 취해온 이집트도 이스라엘군의 지상군 투입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랍 매체 알아라비아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하마스 공습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정당한 자기방어를 넘어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집단처벌 양상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강제이주 명령, 국제법 위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대피명령을 내리면서 이것이 인도적 조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도적 대피’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 밖으로 추방하기 위한 ‘강제이주’ 명령으로,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지난 14일 “우리는 이집트와 함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추방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에 있는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 이집트로 추방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이스라엘이 명령한 대규모 대피는 국제법상 금지돼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지역에 있는 노르웨이 난민위원회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피가 아닌 강제이주”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3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팔레스타인 주민 110만 명에 24시간 시한 내에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통첩한 뒤 수차례 추가 통첩을 했다.

애틀랜틱카운슬의 연구원이자 인권변호사인 기수 니아도 “이번 대피 명령은 민간인에 대한 강제이주 명령”이라며 “국제형사재판소가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응징을 명분으로 내세워 가자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인종 청소’를 벌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마을 500곳을 파괴하고, 수천 명을 살해했으며 75만 명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는 이날 ‘피난민’이 된 이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자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임박한 지상군 투입을 ‘제2의 나크바’로 여기는 이유다.

현재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 1210만 명 가운데 65%인 790만 명이 난민이다. 난민들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약 300만 명)과 가자지구(약 230만 명),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 아랍국가 난민촌 등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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