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풍작’ 굴 양식업계, 위축된 소비에 ‘냉가슴’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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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오염수 후유증·경기 둔화 여파
배춧값 등 올라 김장 특수도 감소세
생산량 더 늘면 산지 가격 하락 전망
시민은 할인행사 몰려 상반된 반응

경남지역 굴 양식업계가 모처럼 맞은 풍작에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남 통영시 생굴 초매식 현장. 경남지역 굴 양식업계가 모처럼 맞은 풍작에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남 통영시 생굴 초매식 현장.

제철을 맞은 경남지역 굴 양식업계가 모처럼 맞은 풍작에도 울상이다. 일본 원전 오염수 후유증에다 경기 둔화로 위축된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배춧값 폭등 여파로 김장철 특수 역시 예년만 못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어민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경남 통영시에 본소를 둔 굴수하식수협은 24일 2023년도 햇굴 초매식을 연다. 초매식은 수협 공판장에서 진행되는 첫 경매 행사다. 겨울이 제철인 굴은 보통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이 기간 국내 최대 양식 굴 산지인 통영과 거제, 고성 앞바다에선 1만 4000여t에 달하는 생굴이 수확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지역 경제 낙수 효과도 상당하다. 이들 지역에선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50명 이상의 인부로 북적이는 굴 박신장이 300여 곳에 달한다. 가공시설까지 포함하면 연관 산업 종사자는 줄잡아 1만 2000여 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올해는 여름 내 태풍이나 이상 고온 피해가 적었던 데다,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어느 해보다 작황이 좋다. 수협은 오염수 불안이 온전히 가시지 않은 만큼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집중한다. 굴수협은 “매일 경매실시 전 경남도 수산안전기술원에 시료를 보내 적합판정을 받은 후 경매를 개시하는 등 생산단계부터 식품안전관리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소비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직후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와 달리, 수산물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오염수가 퍼지기 전에 미리 먹어두자는 불안감이 부추긴 ‘찜찜한 특수’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그래도 시장은 안정되는 듯했다.

그런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4중고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재 시장이 얼어붙었다. 기호식품인 수산물도 마찬가지. 그나마 굴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날씨도 부쩍 쌀쌀해지면서 제철인 굴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고 있다. 당장 할인 행사를 하면 남기지 않고 팔린다. 소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어민들은 애지중지 키운 것들이 행여 제값을 받지 못할지 걱정이다. 지금처럼 소비가 둔화된 상황에 생산량만 늘면 산지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 진작을 핑계로 매일 할인 때리고, 중간 유통상이 가격을 압박하면 어민들은 헐값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더 큰 문제는 김장철이다. 굴 양식업계는 수도권 김장이 시작되는 11월 중순에서 남부 지방 김장이 마무리되는 12월을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는다. 김치의 감칠맛을 내는 재료로 굴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된 노동에 따른 ‘김장 스트레스’가 커 직접 김치를 담그는 가정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추 등 주요 김장 재료 가격까지 부쩍 올라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전례 없는 집중호우와 불볕더위에 흉작이 들어 농작물 공급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배춧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0~45%가량 뛰었다.

게다가 최근엔 새우젓이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굴 특유의 비릿한 향을 싫어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최근 새우젓이 내는 깔끔한 맛을 선호하고 있다. 최대 소비처인 수도권과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해 작황, 생산량에 따라 가격과 수급에 부침이 심한 생굴 보단,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새우젓을 취급하는 게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출하) 초반에 소비를 끌어내지 못하면 자칫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더욱 과감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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