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우정 장항준·송은이, 영화 작업의 문을 함께 열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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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대 동문 연출·제작 협업
미국 한인 세탁소 사건 모티브
영화 ‘오픈 더 도어’ 극장 개봉

컨텐츠랩 비보의 첫 제작 영화
“부끄럽지 않은 작품 내놔 만족”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컨텐츠랩 비보 송은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컨텐츠랩 비보 송은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32년 전 서울예대 남산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는데 오늘날 이렇게 같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둘 다 어엿하게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함께 영화 작업을 하니 더욱 뜻깊어요.”

영화 ‘오픈 더 도어’로 극장가 나들이에 나선 장항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장 감독과 방송인인 ‘컨텐츠랩 비보’ 송은이 대표가 연출자와 제작자로 협업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서 각각 89학번 복학생과 91학번 신입생으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컨텐츠랩 비보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며 “직업인으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활짝 웃었다.

이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의 한인 세탁소에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한 남자가 매형과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장 감독은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진행을 몇 개의 챕터로 나눠 하나씩 짚어 간다. 2015년 컨텐츠랩 비보를 설립한 송 대표가 팟캐스트,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콘텐츠에 이어 처음 제작한 영화다. 송 대표는 “꿈을 하나 이룬 것 같다”며 “첫 영화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놔 만족스럽다”고 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영화는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의 문법과 다르게 흐른다.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먼저 보여준 다음 시간 역순으로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장 감독은 “점점 나이가 드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온전히 이야기와 인물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인은 누군가’보다 ‘왜’에 집중했다”면서 “역순 구성은 동시대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선 캐릭터들의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장 감독은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문을 열고 닫는다”며 “이 문들은 우리 인생에서 선택의 문이기도 해서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욕망의 문을 열었을 때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송 대표도 “마음속엔 늘 선과 악의 문이 있는 것 같다”면서 “나쁘지만 이득이 된다면 그 문을 열 수도 있고, 좋은 걸 알지만 이득이 안 될 것 같을 땐 문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나”라고 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컷. 컨텐츠랩 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 컷. 컨텐츠랩 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영화 ‘오픈 더 도어’를 제작한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왼쪽)와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비보 제공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충무로 상업영화 감독에 첫발을 디딘 장 감독은 이후에도 연출과 집필을 오가며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장 감독은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그때그때 제일 하고 싶고,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대학교 1학년 때 배창호 감독님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감독님이 ‘영화는 낮에도 꿀 수 있는 꿈’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빛이 나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 그 벅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1993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어느덧 30년째 방송 생활을 하고 있는 송 대표의 도전도 계속된다. 송 대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 잡고 하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필요한 이야기, 정말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생각을 깨우고 심장을 깨우는 작품들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재미난 것 하자는 창작 욕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했어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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