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술고래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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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해로운 석회 성분이 수질에 많이 함유된 유럽에서는 예부터 맥주를 물 대신 즐겨 마셨다. 지금도 유럽 각국과 각지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생산되는 이유다. 맥주는 15~16세기 유럽 대항해 시대에 장기간 선상생활을 한 선원의 식수 대용 역할을 했다. 물은 범선에서 쉽게 변질되고 망망대해에선 구할 수 없지만, 발효한 맥주는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했던 게다.

이후 중앙아메리카 서인도제도에서 재배된 사탕수수를 발효·증류해 값싸게 양산한 럼주가 선박 식수의 탈취나 소독용으로 사용됐다. 게다가 선원들은 이 술을 고되고 외로운 뱃일에서 오는 심신의 괴로움을 잊는 벗으로 삼아 물처럼 마셔 웬만한 양에도 끄떡없었다고 한다. 이는 책과 영화가 흔히 뱃사람을 술을 잘하거나 많이 먹는 술꾼으로 묘사하는 계기가 됐다.

술꾼 중에서도 말술을 마다않는 두주불사형 애주가는 술고래에 비유된다. 술고래는 고래가 바닷물을 들이키듯이 술을 굉장히 많이 마시는 사람을 가리킨다. 술을 고래가 물 삼키듯 아주 많이 먹는다는 뜻을 가진 경음(鯨飮)이란 단어가 술고래의 어원을 뒷받침한다. 술고래가 구들장 밑 불길과 연기의 통로인 방고래에서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 방고래에 물을 한정 없이 쏟아부어도 다 차지 않고 새 나간다는 의미에서다.

해양도시 부산이 ‘술고래 도시’란 오명을 쓴 적이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결과, 부산 성인 남자의 월간 음주율이 60.2%로 강원 58.9%, 대전·전남 53.4%, 전북 48.8% 등 다른 시도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해부터 2016년까지 부산 지역 음주율은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인천과 1, 2위를 다툴 정도였다. 부산에 해양수산 분야 뱃사람이 많이 살았던 까닭일까. 부산시는 시민 건강을 위해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 캠페인에 나서야만 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30일 전국 성인의 최근 10년간 음주 추이를 분석하니 많은 양의 술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술고래에 해당하는 고위험 음주자가 남성은 줄고 여성은 늘었다고 밝혔다. 술고래 남성의 감소는 술 권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며 잘 마시는 이를 부러워하던 사회 풍조가 건강을 중시하고 폭음을 나쁘게 보는 쪽으로 바뀐 영향이리라. 여성의 경우 인권 신장으로 사회 진출이 증가한 여성의 음주에 관대해진 세태 때문이지 싶다. 이런 가운데 경제와 민생을 내팽개치고 정쟁에 혈안인 정치권의 행태가 술을 부른다. 반면 소주·맥주·막걸리 가격이 오르거나 꿈틀대 서민이 맘껏 즐기기 부담스러운 현실이 얄궂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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