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이 땅에서 제2의 6·25 전쟁은 안 된다
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한반도 전쟁의 긴장감 최고조 달해
핵전쟁은 민족 공멸로 가는 지름길
북한 MZ세대의 변화에서 희망의 싹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3주년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의 좁은 지대에서 치러진 3년 1개월, 1129일간의 전쟁은 민족 구성원의 엄청난 희생과 국토의 잿더미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다. 북한은 6·25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정전일을 ‘전승절(戰勝節)’이라고 주장한다. 누가 뭐래도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무력 통일 전쟁이며 북한의 주장처럼 그들이 승리한 전쟁도 아니다. 하지만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 상태를 70년간 이어 가고 있어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는 전쟁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동향을 보면 정전협정 이후 있었던 여러 차례의 한반도 전쟁 위기 속에서도 가장 긴장도가 높은 변곡점에 놓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군 이래 최악의 위기라고까지 한다. 끝나지 않는 러·우 전쟁과 북·러 군사적 거래, 이·하마스 충돌과 미·중의 지정학적 대립의 심화 등 전례가 없는 복합 위기 속에서 한반도는 과거의 재래식 전쟁을 뛰어넘는 핵전쟁의 화약고로 제2의 6·25 전쟁을 배태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은 한민족의 전멸과 전 한반도의 초토화라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재앙을 뜻한다.
한반도 핵전쟁 위기설은 최근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핵무기의 기하급수적인 증대, 핵 사용의 노골적인 위협으로 극대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은 9월 말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정책’을 헌법화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2012년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작년 9월 ‘핵 무력 정책’을 법령화한 데 이어 이번에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핵 포기 불가와 핵 능력 고도화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핵 무력 정책을 헌법화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핵 타격 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하며 여러 군종에 실전 배치하는 사업을 강력히 실행해야 한다”고 연설하여 이를 뒷받침했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도 국가의 최고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에 핵무기 사용에 관한 내용을 명시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북한의 핵 무력 정책법 헌법화 사태가 갖는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우리 정부는 “핵 사용 시 북한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의 날 75주년 기념행사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년 만에 진행된 국군의 날 기념 행사는 건군 75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진행된 대규모 행사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북한 핵 무력 정책의 헌법화가 핵 사용 명분의 질주로 해석되고 이에 대응한 한국의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가 강경일변도로 직행하다 보면 자체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압도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지난 한국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기적이다.” 저명한 군사전략 사상가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루이스(Adrian Lewis·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의 냉정한 평가를 되새겨 볼 때이다.
북한이 핵 무력 정책의 헌법화와 한국에 핵 선제 타격을 가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요동과 격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핵 보유가 체제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에 북한 스스로가 직면한다면 상황은 변화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러한 상황은 원칙 있는 대북정책과 함께 북한 내부와 북한 주민의 변화를 통해 가능할 수도 있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오랫동안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설득력을 잃었고 불만은 점증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 변화의 파고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시장을 통해서 성장한 북한판 MZ세대(장마당세대)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이 30%에 달하면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희망의 싹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모 세대와 다른 장마당세대는 시장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 때문에 체제에 대한 신뢰나 의존성이 약하며 반대로 개인주의와 독립성이 강하다.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많으며 한국의 MZ세대처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 따라서 만약 핵 보유로 인한 ‘제2의 고난의 행군’이나 제2의 6·25 전쟁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한다면 북한판 MZ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주민들의 태도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