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발 험지 출마론’ 성공 위한 필수조건은 ‘진정성’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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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출마론의 정치사

총선 단골 소재지만 대부분 실패
국힘 전신 거물급 험지 요구 불복
고향서 무소속 당선 학습효과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 이례적
부산 북강서을 낙선 후 전화위복
민주당, 지역주의 타파 걸고 도전

국민의힘 김기현(왼쪽)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55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왼쪽)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3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55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최근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제기한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의 분위기 반전을 위한 고육책이지만 정치 생명이 걸린 영남 중진들은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그간 정치사에서 험지 출마는 극히 일부의 ‘대박’을 제외하고 대부분 ‘쪽박’에 그쳐 당내 의견도 분분하다. 험지 출마 카드가 총선에서 부작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진정성 있는 헌신을 앞세우면 당 위기 극복이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공존한다.

인 혁신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나는 계백을 좋아한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안 되더라도 싸워야 ‘뚝심 있다’ ‘용기 있다’고 하지 않겠나”라며 주호영(대구 수성갑·5선) 의원과 김기현(울산 남을·4선) 대표 등 영남권 의원을 직접 꼽았다.

중진급 인사의 ‘험지 출마론’은 총선 때마다 자주 등장했던 소재다. 당의 총선 위기 극복 전략으로 민심 달래기용 카드로서 종종 쓰였다. 하지만 그동안 험지에 몸을 던진 출마자들은 매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극히 드물게 ‘대박’ 사례도 있었다. 험지에 출마했다가 단숨에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8년 서울 종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재선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지역 구도의 벽을 깨겠다며 험지인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 붙었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조직됐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진정성 있는 험지 출마 명분과 개인적인 스토리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이후 민주당계에선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명분과 정치적 ‘체급 상승’을 노린 험지 도전이 이어졌다. 수도권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부겸 전 총리는 19대 총선에서 영남권인 대구 수성갑으로 옮긴 뒤 2014년 대구시장선거에까지 출마하는 등 도전을 이어갔다. 결국 20대 총선 때 수성갑에서 당선돼 이후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도 지냈다. 경기도 고양덕양갑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은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 지역에 출마해 낙선했다. 호남 지역 3선이던 정동영 전 의원 역시 19대 총선과 2015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험지인 서울 강남·관악에 잇따라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국민의힘 계열의 험지 출마는 대부분 실패했다. 지난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공관위 요구에 따라 험지에 출마했던 황교안(서울 종로), 김병준(세종을), 유정복(인천 남동갑), 이혜훈(서울 동대문을), 이종구(경기도 광주갑) 후보는 모두 낙선했고, 수도권 선거는 참패였다. 감동도 실리도 없었다. 험지 출마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표심을 움직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반면 당 지도부의 험지 출마 요구에 불복했던 거물급 인사들은 무소속 출마와 지역 내 이동 등 대안으로 정치 생명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4선까지 지낸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총선 당시 수도권 출마 요구에 반발, 무소속으로 고향인 대구 수성을에서 5선을 차지했고, 현재도 차기 대선 출마를 노리는 중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20대 총선에서 험지 출마를 거부하고 부산 중영도에서 6선 고지에 올랐다. 김태호 의원(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3선)도 험지 출마를 거부한 채 무소속으로 ‘고향 출마’를 고수해 당선됐다.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응한 이들과 거부한 채 버틴 이들의 상반된 현실은 여당 내부에 험지 출마에 대한 냉소적 인식을 심화시켰다. 현 여당에서도 호남 출신인 이정현 전 의원의 경우 끊임없이 당의 험지인 호남을 공략해 19대 국회에서 보수 정당사 처음으로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 의원이 됐고, 그 여세로 보수정당 최초의 호남 출신 당대표가 됐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였다.

이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불거진 험지 출마론에 대한 당내 의견도 분분하다. 과거 실패 경험 탓인지 경쟁력 있는 인물이 자발적으로 험지로 나서는 게 최선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양상이다. 해운대갑 지역구를 내놓고 내년 총선에서 서울 출마를 결심한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확장성 또는 서울에서의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3선 이상은 다 서울에 가라’고 했다가는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진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중진들의 자발적인 결단으로 여당이 먼저 헌신하고 절박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일률적으로 ‘중진들이 다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깊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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