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에 감정노동까지… 위험한 노동환경 내몰린 부산 생활가전 방문노동자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지역 노동 실태조사 및 개선과제 토론회
“방문 점검을 하러 갔는데 고객이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칼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아무 곳에 놓여있었고 저에게 나쁜 짓 안 할 거라고 말하면서 여기서 소리 질러도 아무도 안 온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겁나니까 웃으면서 비위를 맞추고 빨리 나와야 됩니다.” 부산지역에서 일하는 방문 점검 노동자 A 씨가 부산노동권익센터에 전한 경험담이다.
부산지역 생활가전 방문서비스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방문서비스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이 부재한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노동권익센터는 지난 3일 부산시의회에서 ‘부산지역 생활가전 방문서비스 노동 실태조사와 개선과제 토론회’를 열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부산지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방문점검원과 설치기사 262명(방문점검원 224명·설치기사 38명)을 대상으로 노동 조건과 환경 그리고 건강과 안전 등을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생활 가전 제품 기술의 발달과 1인 가구 증가, 구독경제 활성화 등으로 방문서비스 노동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고용관계와 노동 환경 문제는 비가시화됐다. 특히 지역의 방문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고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소외돼 센터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부산지역 방문 서비스 노동자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지역 생활가전 설치 기사의 시간당 순수입은 1만 802원으로 최저시급인 9620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방문점검원의 시간당 순수입은 최저시급의 53%를 조금 넘는 5063원에 불과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는 대부분 기간제·임기제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로 소속 기업의 지시와 업무 관리를 받지만 실적으로 수당을 챙겨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부정당해 휴가와 퇴직금 등 법·제도상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실제로 기본급 없이 설치나 점검 건수만큼 수수료를 받는 대신 유류비, 보험료, 주차비 등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노동자가 부담하고 있다. 방문점검원은 한 달 평균 52만 원, 설치기사는 112만 원 정도의 업무 비용을 자비로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시간, 고객과의 통화 등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방문점검원이 8.9시간, 설치 기사는 9.25시간에 이른다. 실제 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노동 임금이 낮게 책정돼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노동은 이들을 위험한 노동 환경에 내몰고 있었다. 조사 참여자 중 여성이 89.7%인 방문점검원은 44.2%가 고객에게 욕설을 당했다. 성희롱은 28.6%, 협박을 경험한 이들도 23.7% 정도였다. 설치기사는 고객에게 욕설을 당한 경험이 63.2%, 협박을 당한 경험이 44.7%였다. 방문서비스 노동자의 안전과 책임에 대한 부재가 심각하지만 고객에 대한 제재나 인식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업무 중 안전사고나 갑질을 당해도 노동자들은 적극적인 신고나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 고객의 평가와 관계 등이 영업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책임은 노동자들이 오롯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날 △정부차원의 표준계약서 제정 및 운영 △수수료 체계 현실화 △고용불안 해소 △노동자 안전과 건강권 확보 △직고용 전환 등을 제안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