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사진과 세상, 추상적인 면을 보고자 했죠” [전시를 듣다]
현대사진 거장 랄프 깁슨 인터뷰
부산 세 번째 전시 ‘폴리티컬 앱스트랙션’
해운대구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에서 전시
“어느 국가 가든 사진서 보이는 이미지 다르지 않아”
추상적 관점 집중… 딥틱으로 새 해석 불러
인터뷰 중 통역 발 사진 찍어 “내 눈은 늘 열려 있어”
현대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이 다시 부산을 찾았다.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은 지난 3일 랄프 깁슨의 감각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전시 ‘폴리티컬 앱스트랙션(Political Abstraction)’을 개막했다. 지난해 10월 1일 부산 해운대구에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세 번째 전시로, 랄프 깁슨은 개막식에 앞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 자신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와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아티스트 토크 이후 랄프 깁슨과 따로 만나 추가 인터뷰를 가졌다.
‘폴리티컬 앱스트랙션’은 랄프 깁슨의 컬러와 흑백 사진 71점을 소개한다. 각 작품들은 ‘앵글과 곡선의 조화, 빛과 어둠의 대조, 형태 또는 패턴의 이중 배치’를 보여준다. 랄프 깁슨은 사진집을 준비하며 여러 나라의 많은 도시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보니 모두 뉴욕에서 실제 내가 볼 수 있는(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 국가를 가든 사진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라는 관점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한국인들로부터 전시 제목에 대해 정치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예술가로서 저는 중립적인 사람입니다. 작품에 경제적이거나 사회 정의나 종교적 의미를 가미한 것을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사진과 세상의 추상적인 면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2015년에 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글로벌화의 초기 단계일 때입니다. ‘폴리티컬 앱스트랙션’은 다른 이름으로 ‘글로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시에서 컬러와 흑백으로 구성된 딥틱(액자 안에 두 개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과 한 쌍으로 배치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두 사진이 병치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일어난다. 실제로 여성의 스커트 자락을 찍은 사진과 눈이 쌓인 도로 바닥 사진을 놓고 세 명의 관람객이 이미지의 형태, 구도, 색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이해했다.
“모든 해석은 다 옳습니다.” 각 사진을 딥틱으로 배치할 때 고려하는 기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랄프 깁슨은 “보는 대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면 글로 적었을 겁니다. 사진의 언어, 시각 언어에 관심을 가집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시각 언어가 더 진화하기를 기대합니다. 계속해서 사회는 변하고, 더 정교하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보고자 하는 것, 사진을 찍고 배열하는 경험에 더 집중합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랄프 깁슨은 “자기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수록 나에 대해 더 돌아보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입니다.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면 (사진이 아닌) 광고를 했겠지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찍은 컬러와 흑백 사진이 인상적이라고 했더니 작가는 “하나의 눈으로 봤다”고 답했다. “가끔 흑백사진이 더 추상적 느낌을 줍니다. 색깔이 있으면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둘이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랄프 깁슨은 사람들에게 흑백과 컬러 선택 기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세 가지를 좋아한다고 답합니다. 블랙, 화이트, 컬러.”
랄프 깁슨은 인터뷰에서 관람객에 대해 ‘리더(Reader)’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2층에 전시된 더미북(실제 책과 같은 형태와 크기로 페이지를 미리 구성한 핸드메이드 가제본)도 그가 사진집 제작에 가지는 애정을 보여줬다. 랄프 깁슨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400장이 넘는 사진집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가 디지털 카메라를 만난 것은 75세 때의 일이다. 랄프 깁슨은 이것을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랄프 깁슨은 한국과 같이 아름다운 나라에 오면 사진이 여기저기 많은데 서양인으로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1971년 런던에 한 달을 머물며 유럽의 관문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도 그렇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는 관문과 같다고 느낍니다.”
랄프 깁슨은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그의 작업을 ‘직관’할 기회가 생겼다. 인터뷰 중 랄프 깁슨이 갑자기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옆에 있던 통역자의 발 사진을 찍었다.
“내 눈은 늘 오픈되어 있습니다. 나는 눈이 떠 있을 때는 언제든 작품을 합니다. 눈이 감겨 있다면 내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인생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술은 내 삶을 더 좋게 만들고, 삶은 내 예술을 더 좋게 만듭니다.”
랄프 깁슨 사진전 ‘폴리티컬 앱스트랙션’은 2024년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또한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랄프 깁슨의 초기 대표작 ‘더 블랙 트리올로지’을 감상할 수 있다.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부산시 해운대구 중동1로37번길 10)은 월요일은 휴관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