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일등 시민의 우월감과 '인 서울' 욕망
김백상 사회부 차장
외국을 자주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꾸준히 대한민국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몇 년 새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인이 나와 한국말로 극이 진행되는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인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에 이어 문화 강국으로도 인정하는 외국 언론 기사들을 보면, 괜스레 뿌듯해진다.
사실 대한민국 위상과 나의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아무리 BTS가 전 세계인으로부터 “멋지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한들, 내가 외국 길거리를 헤맬 때 비슷한 평가를 받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잘 나가면 나의 가치도 올라가는 기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기분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소속감’일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마다 소속감이 존재한다. 부산 시민은 부산의 구성원으로서, 서울 시민은 서울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경제·문화 모든 것이 집중된 서울 사람들이 소속감을 가장 드러내는 듯하다.
서울 친구들은 고공 행진을 하는 집값과 꽉 막힌 도로 탓에 “사는 것이 팍팍하다”고 종종 투덜댄다. 그 불평 속에서도 비싼 집값과 분주한 일상을 버틸 정도의 능력을 나는 갖추고 있다는 우월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서울에 있는 같은 직장 안에서도 주소지에 따라 ‘인 서울’과 ‘인 경기도’를 구분하는 농담을 나눈다고 하니, 서울 시민이 곧 ‘일등 시민’이라는 인식 또는 선입견 자체를 부정하기 힘들 듯하다.
최근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시키자는 제안이 뜨거운 이슈다. 만일 김포시 시민이었다면, 이 제안에 귀가 솔깃했을 듯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은 없더라도, 가만히 있어도 서울 시민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며 일등 시민의 자부심을 뽐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은 과밀이고 너무 크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반면 김포 편입이 필요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일명 ‘메가 서울’에 힘이 실리는 건 ‘인 서울’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인 듯하다. 일각에서는 세계 주요 수도에 비해 서울이 크지 않다는 근거도 내세운다. 일본 도쿄 특별구 인구가 980만 명, 서울은 940만 명 정도인 걸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일본의 인구는 1억 2300만 명, 대한민국은 5100만 명 정도이다. 서울이 작다기보다 대한민국 인구가 적은 게 문제다.
메가 서울론은 부울경이 추진한 메가시티와도 결이 완전히 다르다. 메가시티는 부울경이 연합해 함께 잘살자는 취지였지만, 메가 서울론은 말 그대로 편입이고 홀로 덩치를 키우는 방식이다.
종종 지역 내 괜찮은 직장을 두고도, 서울의 삶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마주친다. 서울의 삶은 실질적으로 더 팍팍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옛말만큼이나 오래된 ‘인 서울’ 욕망을 실현하고 떠나는 듯하다.
대한민국 성장의 큰 걸림돌이 지역 불균형이다. 지금이 만연한 ‘인 서울’ 욕구를 자극해야 하는 시점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은 지역 구성원들도 지역에 소속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때이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