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용선 독일 코리아재단 이사 “타국서 삶을 개척한 파독 광부·간호사 재조명해야”
1972년 이민 독일교포 1.5세대
한독 교류 140주년 행사로 내한
파독 근로자 연구 ‘미지의 다양성’ 발간
반세기 전, 독일행을 택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1960~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은 정부 공식 집계만 해도 2만 명에 달한다. 우리가 아는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춘다.
“그들이 돈만 번 게 아닙니다.” 독일 코리아재단 장용선(61) 이사는 ‘돈만 번 게 아닌’ 간호사와 광부들의 파독과 그 뒷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 이사는 독일교포 1.5세대다. 1972년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어려움에 처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독일로 건너갔다.
장 이사는 “독일은 유럽에서도 이주민이 적은 단일국가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1960~70년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의 첫 교포 역사를 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제가 갈 당시만 해도 동양인이 굉장히 적어서 놀림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포 1세대인 부모의 다음 세대인 본인을 독일 교포 ‘1.5 세대’라 일컬었다.
동포가 드문 독일 맨땅에서 교포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앞서 갔던 파독 간호사들의 공이라고 장 이사는 설명했다. “교포들은 1세대 파독 간호사분들에게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한국인 간호사들이 워낙 빠릿빠릿하고 상냥한 데다 정도 많아서 인기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한국인 간호사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 한국인 노동자 전반에 대한 호감으로 옮겨갔죠. 덕분에 한국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교포 1.5세대로서 장 이사는 교포 1세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흔적과 함께 성장했고, 그들의 파독 이후 삶을 지켜봤다.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그 이야기를 엮은 책 〈미지의 다양성〉을 발간했다. 독일 교포들의 어려움과 삶을 개척해 간 이야기가 담겼다. 장 이사는 “한국에서 파독 간호사, 광부들은 외화벌이로만 인식이 되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주체적인 활동이 정말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파독 간호사들의 투쟁이 본격적인 한국 여성 운동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파독 간호사는 국가 간 3년 근로 계약으로 묶어뒀지만, 간호사들은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떠나거나 머물 권리가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주장이었다. 장 이사는 “국가에 대항해 주도적으로 삶을 선택하겠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라며 “간호사의 의무 근무 기간 이후 그들은 독일에서 교육,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갔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의 자유 투쟁도 파독 광부들의 숨겨진 이야기다. 1975년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 수십 명이 집단 해고를 당하는 ‘발줌 광산사건’을 계기로 독일 내 한인 광부들은 노동자연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1980년 한국에서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에도 독일 정부와 교회를 통해 간접적인 지원을 이어 나갔다.
장 이사는 이처럼 ‘외화벌이’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파독 한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데 익숙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간 독일 교포의 모습을 통해 ‘미지의 길’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독일 생활만 50년이 넘었지만 장 이사는 한국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10년 넘게 몸담고 있는 독일 코리아재단에서 그는 꾸준히 한국과 독일을 잇는 민간 외교관으로 일해왔다. 한국의 사회복지, 교육 영역을 지원하고 독일의 앞선 시스템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탈북민 학생들이 다니는 부산 장대현 학교 학생들을 5년 이상 지원한 것도 그런 활동 중 하나다. 장 이사는 “작지만 한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한독 교류 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