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첫 공공미술관의 역사와 공간을 돌아보다 [전시를 듣다]
부산시립미술관 공사 전 마지막 기획전
내년부터 대대적 리노베이션 들어가
‘과거는 자신이 줄거리를 갖고…’
미술관 설립과 변화 등 소개 전시
작가들이 공간 재해석한 ‘극장’
마루 바닥 뜯고 벽에 그래피티도
평소 못 본 미술관 내부 볼 기회
부산시립미술관의 역사와 미술관에 대한 생각을 담은 두 개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이 내년부터 시작되는 리노베이션 공사에 앞서 진행하는 마지막 전시이다. 미술관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방향성,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돌아볼 수 있다.
■25년 역사 기억하기
‘부산에 공공미술관 하나도 없다.’ 1985년 12월 6일 자 <부산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 양대 공공미술관 체제를 갖춘 지금 돌아보면 이런 때도 있었구나 싶다. ‘과거는 자신이 줄거리를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이하 ‘과거’전)는 1998년 부산지역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문을 연 부산시립미술관의 25년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과거’전은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섹션1 ‘국가에서 도시로, 지방 미술관 개관의 시대’에서는 국제화와 지방분권화 같은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전개된 시립미술관 건립 과정을 보여준다. 동시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시립미술관의 방향성을 개관전 작품, 당시 신문 기사, 영상과 전시 관련 자료들로 살펴본다. 섹션1에서는 부산시립미술관 최초의 뉴미디어 작품으로 등록된 백남준 ‘소통/운송’을 볼 수 있다. 또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이후 영화영상도시 부산의 특성을 반영한 ‘영화와 미술’전 출품작 박은진 ‘98가상 스크린(키스)’도 전시된다. 1990년대 한국 대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흥덕의 그림 ‘지하철 사람들’ 등도 관람할 수 있다.
섹션2 ‘지역 미술 돌보기’에서는 부산미술과 부산 작가를 소개한 전시들에 대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부산미술의 1세대’ ‘도큐멘타 부산’ ‘피란수도 부산:절망 속에 핀 꽃’ ‘거대한 일상:지층의 역전’ 등 시대별 부산미술을 알린 전시를 돌아본다. 섹션3 ‘변화하는 도시, 미술관의 순응과 대응’은 시립미술관 주변 지역의 변화, 이우환 공간 설립과 그 영향 등을 소개한다. 용두산공원에서 사방 360도의 도시 풍경을 찍은 안세권 ‘부산 파노라마Ⅰ’ 등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미술관 전시, 교육, 행사 등을 기록한 사진을 이용한 변재규의 설치 작품 ‘마그리트의 시도를 생각하며’도 볼거리이다.
■미술관 공간 뜯어보기
마루 바닥을 뜯고, 벽에 낙서를 하고. ‘극장’전은 미술관을 극장에, 전시장을 무대에 비유한 기획전이다. 작가들이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일을 시도한 것은 부산시립미술관이 전면 리노베이션 공사를 앞두고 있기에 가능했다. 13명의 작가는 미술관 공간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과 기대를 담은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시립미술관 1층 로비부터 2층, 3층으로 테라스가 새로 생겼다. 김동희의 ‘호로 이어진 계단’이다. 김 작가는 1층에서 3층까지 퐁당퐁당 이어지는 반원 형태의 구조물을 새로 만들어서 시민들이 공간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에는 시립미술관에 곡선의 미가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담겼다. 김 작가는 2층 전시장 곳곳의 벽과 바닥을 깎아서 미술관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도 같이 선보인다.
진달래&박우혁 작가는 시립미술관 2층 로비 공간을 계단형 구조물로 연결한 ‘더 세컨드 플로어’를 제작했다. 연기백 작가는 실제 시립미술관 전시장 나무 바닥재를 뜯어서 불로 태운 뒤 다시 설치한 ‘구축향’을 전시한다. 그는 또 전시장의 가벽을 뜯어서 바깥을 볼 수 있는 작품도 준비했다. 정정주 작가는 폼보드로 현재와 리노베이션 이후 시립미술관의 건물을 구현한 작품을 소개한다.
부산의 대표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 작가는 관객 참여형 그래피티 작품 ‘메이크 썸 노이즈’를 선보인다. 시민들의 참여도가 너무 높아 벽면 가득 글과 그림이 채워져 있다. 또 전시장 안에 농구 골대를 설치해서 청소년 관람객이 농구를 즐기기도 한다. 무진형제는 실내 스쿼시를 이용해 작가와 작품, 관람객, 도슨트의 관계를 드러낸 2채널 비디오 작업을 전시한다. 최윤석 작가는 미술관 공간을 신체로 해석해서 곳곳에 각 장기에서 나는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박스형 구조물을 설치했다.
공간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공간 자체에 드로잉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조부경 작가는 단순한 색과 면으로 공간을 그린다.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가벽 제거로 자연 채광이 이뤄진 전시장과 잘 어우러진다. 오종 작가는 미술관 건물과 창문, 계단, 기둥, 타일 등에서 영감을 받은 빛과 선을 이용해 작지만 매력적인 공간 드로잉을 선보인다. 건축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다이아거날 써츠가 ‘산의 도시’ 부산에 어울리는 미술관을 제안한 작품도 재미있다.
‘극장’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박진아 작가가 지난 8월 막을 내린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전시 ‘영점’ 준비 과정을 그대로 옮긴 회화와 벽화 작업이다. 실제 현장을 그대로 옮긴 작품 속에는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등이 작품을 설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과거’전과 ‘극장’전은 오는 12월 17일까지 열린다. 지난 25년 동안 시민들과 함께해 온 부산시립미술관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획전은 충분히 챙겨볼 가치가 있다. 051-744-2602.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