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나쁘게 잘하는 정치의 시대
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지역, 이념, 세대, 계급, 남녀 갈등
바른 정치, 각종 병폐 개선·해소해야
한국 정치는 고질적 문제 더 악화시켜
지방시대·슈퍼 서울시대 정책 충돌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술책
혁신은 ‘바르게 잘하는 정치’ 추구해야
요즘 대한민국에 ‘나쁜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바른 정치’가 아니라 ‘나쁜 정치’라서 황당하고 우려스럽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른 것(政者正也)’이라고 했다. 정치는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존재하지만, 공자의 이 말씀이 새삼 깊은 울림을 가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당들은 ‘개혁’이 아닌 ‘혁신’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혁신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정당들이 이렇게 가죽을 고쳐 쓰는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가죽을 쓰는 혁신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은, 강도 높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지금 진짜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답할 국민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정당들이 혁신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 혁신의 내용이 바른 정치가 아니라 나쁜 정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른 정치의 방향은 명확하다.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 이념, 세대, 계급·계층, 남녀 갈등 등을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지역 갈등은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와 영호남 간의 경쟁을, 이념 갈등은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세대 갈등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신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을, 계급·계층 갈등은 부와 명예와 지위의 편중과 불평등 심화를 의미한다. 남녀 갈등은 양성 간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핵심이다. 이들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고 국민은 불행하다. ‘바른 정치’는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당은 거꾸로다. 이런 갈등과 문제를 오히려 악용하고 있다. 선거 만능주의에 빠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국민의힘은 김포를 필두로 여타 경기도 시들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무산시킨 국민의힘이 서울 슈퍼 메가시티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윤 대통령 공약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국민의힘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시대’가 아닌 ‘서울시대’를 외치고 있다. 게다가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외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을 열고 지방시대를 외쳤다. 이 정도면 정책의 일관성과 정합성은 사라진 것이다. 정신 분열이거나 철면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게 바로 나쁜 정치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와 공익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그리고 정책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아주 못된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런 ‘나쁜 정치’를 선거에서 이기는 ‘잘하는 정치’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정치를 ‘나쁘게 잘하는 정치’라고 칭할 수 있겠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이런 ‘나쁘게 잘하는 정치’를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대선 때 이준석 대표는 이대남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을 앞장서서 조장했다. 20대를 남녀로 갈라치고 이대남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활용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해체를 대통령 공약으로 내놓은 것이다.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공당의 대표가 오히려 이들 갈등을 활성화해서 표 얻기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집권한 국민의힘은 나라 경제와 서민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부자 감세를 지속하고 있다. 불평등과 계급·계층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념정치를 강조하고 지속하면서 이념 갈등을 촉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선 이후 국민의힘은 나쁜 정치라도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가 더 좋은 정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쁘게 잘하는 정치’는 결국 ‘잘하는 정치’가 아니라 ‘나쁜 정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나쁜 정치는 결국에는 나쁠 수밖에 없다. 이대남 표를 가져왔지만, 이대남들에게 약속한 대선 공약은 상당 부분 용두사미나 물거품이 되었다. 여성가족부는 지리멸렬하게 남아 있고, 군인과 청년 지원 예산은 모두 예외 없이 삭감됐다. 이런 정치는 사기 정치고 뒤통수 정치다. 아주 나쁜 정치인 것이다.
‘나쁘게 잘하는 정치’는 단기적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라도 장기적으로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정치다. ‘잘하는 정치’가 아니라 ‘나쁜 정치’다. 이렇듯 ‘나쁘게 잘하는 정치’는 몰염치의 정치고, 나라와 국민을 더 어렵게 만드는 최악의 정치다. 여당이 혁신을 추구한다면 나쁜 정치부터 혁신하는 게 맞다. ‘나쁘게 잘하는 정치’가 아니라 ‘바르게 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