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주의 기운이 부산으로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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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백일몽 같던 가덕신공항 개항은 곧 현실로
뜬구름 같던 엑스포 유치 가능성도 높아져
간절함이 패배주의 씻어내자 드러난 저력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파울로 코엘류식 아포리즘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낯간지러운 그 말들이 그땐 그렇게나 싫었다. 아직 못 이룬 자를 조롱하는 이미 이룬 자의 악취미처럼 느껴진 탓이다.

지금도 묘한 불쾌감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아니다. 간절히 바라니 이루어지는 꿈을 실제로 보았고, 또 다른 꿈도 실현이 코앞이다.

기자 초년병의 눈에 가덕신공항은 먼 하늘의 뜬구름이었다. 중앙 정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작은 섬에 관문 공항을 세우자는 건 그저 억지라고 여겼다.

백일몽인 줄 알았던 관문 공항의 꿈은 세월을 지나 불가역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사업을 이끌 가덕신공항건설공단의 설립 근거가 되는 법안이 지난 9월 국회 상임위 전체 회의를 줄줄이 통과했다. 건설 전반을 컨트롤하는 전문 기구가 생기면서 2029년 조기 개항에도 탄력이 붙었다.


자고 났더니 하루아침에 위대해졌다는 이는 있어도, 하루아침에 이뤄졌다는 대업은 없는 법이다. 가덕신공항이 있기까지 부산시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끊임없는 관문 공항을 외치고, 행동했다. 10년의 외침을 감내하고 지지해 준 부산시민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정말 볼을 꼬집어도 깨지 않는 현실이 된 셈이다.

이달 최종개최지 발표를 앞둔 2030월드엑스포도 한때는 그저 부산의 막연한 바람이었다.

전국이 어리석은 도전이라고 비웃을 때도 부산은 지치지 않고 외쳤다.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그 외침을 듣기로도 한 듯 승부의 추가 부산으로 기운다. 참혹한 전쟁이야 부산이 바란 바가 아니었지만 경쟁도시였던 우크라이나의 오데사가 전화에 휩쓸렸고, 최대 라이벌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뜬금없는 호주의 포기로 사우디의 품에 안긴 2034년 월드컵은 또 어떤가. 마치 누가 등을 떠밀기라도 하듯 점점 가까워지는 2030월드엑스포 유치의 가능성을 느끼면서 ‘우주의 기운이 실감 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며 아포리즘의 효과가 단순히 주술의 영역은 아니라는 자기반성적인 진단을 내렸다. 간절히 바란다는 그 자체가 바람을 현실화 시킬 의지를 품고 있다는 뜻이지 아니었을까. 의지가 행동을 낳고, 행동이 다시 마음가짐을 바꾼 것이다.

부산은 인구 400만을 코앞에서 두고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제2의 도시’를 외치면 고루한 사람 취급을 받았고, 청년이 떠나면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문구가 유행했다. 여간해선 떼어내기 힘든 패배주의가 ‘우주의 기운’에 씻겨 내려가는 광경을 목도하는 중이다.

지난 주말 오색찬란한 불꽃으로 단장한 광안대교의 풍경을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보며 ‘저 다리가 없었다면 부산은 한참 더 우울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지인과 나눴다.

1995년 기공식 당시만 해도 ‘매연이 심해지고 경관을 망친다’는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 언론의 반대에 건설 계획이 통째로 폐기될 뻔했던 게 광안대교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부산 관광 수입의 3할이 그 다리에서 파생된다고 한다.

패배주의를 씻어내고 이룬 대업은 늘 큰 감동과 이익으로 이어진다. 쌀쌀한 가을 저녁에도 77만 명의 인파가 몰린 열정의 부산불꽃축제 현장을 보고 누가 부산을 늙어가는 도시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설령 2030월드엑스포 유치가 불발로 끝난다고 해도 부산이 이전처럼 패배감에 주눅 들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부산의 꿈이 정부를 움직였고, 재계를 뛰게 했다. K팝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가 부산이란 도시를 주목하게 했다. 한 차례 넘어졌을 뿐, 다시 신발 끈을 매면 될 일이다. 간절함으로 패배의식을 씻어낸 부산의 저력이 그만한 힘이 있었다.

간절함이 불러온 우주의 기운은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아시아나의 둥지를 뛰쳐나온 에어부산이 가덕신공항을 모항으로 독자생존 하는 데 쓰여야 한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이 친환경 차량 생산기지로 화려하게 복귀해 SM5 이후 또 한 번 ‘부산 차’를 내놓게 해야 한다.

용접공을 못 구해 수주 물량을 쌓아놓고도 유동성 위기에 갇힌 대선조선이 보란 듯이 워크아웃을 극복하고 조선기자재에 일감을 쏟아내게 해야 한다. 부산 선수와 울산 선수의 결합으로 눈길을 끈 금양과 에스엠랩의 전략적 제휴가 기장군을 이차전지 메카로 도약하도록 해야 하고, 낡은 고정관념에 좌초됐던 부산 복합리조트의 청사진을 다시 불러들여 원도심을 다시 불야성으로 바꾸게 해야 한다. 부산으로 몰려온 우주의 기운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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