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비틀어진 기후가 들려주는 파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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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UKO 비틀어진 사계 공연 장면. 영도문화예술회관 제공 UKO 비틀어진 사계 공연 장면. 영도문화예술회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한 전시 ‘모카 플랫폼 재료 모으기’가 한창이다. 이즈음 기상이변으로 재난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누구랄 것 없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가. 지난 여름 방문했을 때 기후 데이터를 소리로 들려준 사운드 퍼포먼스 ‘기후의 소리’를 접했다. 조현민·신교명·이가현·김도경이 을숙도 주변 수풀과 습지, 도로 주변에 웨더 스테이션을 설치하여 미기상(微氣象)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데이터화하여 음계로 치환한 창발적인 시도였다.

아크카(AKQA) 그룹의 ‘불확실한 사계(Uncertain Four Seasons)’는 기후 데이터를 활용한 음악 프로젝트다. 알고리즘으로 2050년 기후 데이터를 예측하여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해 연주한다. 밝고 조화로운 음악이 음산하고 황량하게 변주되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도시마다 다르다. 가령 시드니 버전은 조류종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여름 태풍이 길고 강하게 지속되는 미래를 음울하게 들려준다. 2019년 NDR엘브필하모니에서 처음 연주한 이래 세계 15개 도시에서 연주했다. 기후행동을 확산하기 위해 악보를 무료로 배포하기도 한다. 아포칼립스(Apocalypse·종말)가 멀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 수요일 영도문화예술회관에서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가 ‘비틀어진 사계:가을’을 초연했다. 부산 작곡가 레미스피(Remispy)가 영도의 가을을 표현한 곡이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인간이 편곡하고, 2050년이 아닌 2023년 현재를 담았다는 점에서 ‘불확실한 사계’와 다르다. 곡의 첫머리에 비발디의 ‘여름’ 한 자락을 가져와 염천과 다를 바 없던 초가을을 들려줌으로써 계절의 순환이 붕괴된 이즈음의 나날을 환기했다. 솔리스트 시명운의 깔끔한 선율 표현과 타악기의 풍성한 음색은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고, 영도의 생태운동가 이송미의 토크는 기후행동의 시급성을 알렸다.

애초 이 공연은 ‘불확실한 사계’를 연주할 계획이었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기후위기를 음악으로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연주곡목을 변경한 까닭은 유독 한국에서만 한 에이전트가 ‘불확실한 사계’의 공연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한 오케스트라 규모 확대와 연주자 파견과 같은 조건을 수용하기란 어려웠다. 아크카 뉴질랜드 전무이사 팀 디바인(Tim Devine)이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기후위기예술은 기후행동의 예술적 실천이다.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전지구적 위기에 대한 예술의 운명적 응답이다. 특정인이나 단체가 전유하는 것은 기후행동의 장엄한 행진을 가로막는 행위가 아닐까. 그나마 레미스피의 ‘가을’이 생명의 약동과 인간적 감각으로 깊다는 점에 위안을 얻었다. 여전히 희망의 노래를 멈출 수 없는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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