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세상의 끝이 있다면…
신호철 소설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은 왜 없는 걸까? 우리 공간이 3차원이라면 5차원, 6차원은 어떤 모습일까?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생명체는 왜 생겨났을까?
필자는 이런 호기심에 곧잘 시간을 허비한다. 물론, 아무리 사색에 잠겨봐야 제대로 된 규명이나 증명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대부분 상상이나 망상으로 흘러가기 일쑤이다. 상상으로 빠지면 더더욱 거리낌이 없다. 이것저것 끼워 맞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결론을 혼자서 내리고 즐거워한다. 뭐, 취미 혹은, 취향이라고 해두자. 돈도 들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는 일도 아니니 당분간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
최근엔 꽤 묵직한 결론을 하나 건졌다.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 뒤집어질 얇디얇은 결론지만,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양 방안을 빙빙 돌며 혼자 외쳤다.
“그래, 이 세상은 무한하지 않았던 거야.”
뭐든 뒤집어 놔야 그럴듯해 보이는 필자의 삐딱한 취향에 딱 맞는 결론이었다. 물론 나름의 근거는 있다.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끼워 맞춘 것으로 목청 큰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단박 수그러질 주장이지만 일단은 근거를 대보겠다.
‘제논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았을 때, 화살과 과녁까지의 거리를 무한대로 쪼갤 수 있다. 무한대로 쪼개진 간격을 이동하려면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화살은 영원히 과녁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무한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역설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화살은 어김없이 과녁에 꽂힌다. 미적분학과 양자역학으로 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역설을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여하튼 화살은 과녁에 꽂히기 때문이다.
플랑크 길이에 관해 주워들은 것도 이 말에 힘을 보태줬다. 플랑크 길이는 우주를 해석하는 물리법칙으로 도출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한의 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보다 작은 길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플랑크 길이는 1.62×10-35m에 해당하지만, 0.5 플랑크에 해당하는 길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길이 또한 무한대로 쪼갤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니까 수학적으로 1을 3으로 나누면 0.333…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 현실 세계에선 0.333…3으로 끝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결론 내려야 할 것 같았다. 마치,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세상이 유한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이 공간에 끝이 있고, 모든 것이 소멸하여 시간이 멈추는 날이 있다니…. 그렇다면 인간은? 대대손손 자손을 이어, 지구가 수명이 다하면 다른 은하로 이주해서 고도의 문명을 이어갈 인간도 결국은 세상의 끝과 함께해야 한단 말인가?
순간, 번뜩 떠올랐다. 태초에 생명체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참고로 필자는 생명체가 탄생한 이유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다고 믿는 부류이다). 생명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 있다면, 새로운 시작을 여는 존재는 결국 생명체가 아닐까? 그 새로운 우주를 여는 최종적 지혜를 얻기 위해 생명체는 끊임없이 진화했던 것이고?
아. 생명체의 숭고한 가치란 정말…. 그건 그렇고, 이번 달 지출이 또 월급을 초과했다. 매달 반복되는 이 난제를 풀어낼 실마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