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 가자 통치” 못 박은 미… 실현 가능성은 ‘글쎄’
이스라엘 재점령 구상 싹 자르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통치권”
과도통치 개입 원하는 국가 없고
팔 자치역량도 부족 현실성 의문
미국이 향후 가자지구의 궁극적인 통치 주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의 재점령론을 서둘러 진화하는 입장 천명이었으나 실현을 위한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8일(현지 시간)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 부대행사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가자지구의 비전을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하마스 제거로 마무리되면 팔레스타인 주민이 가자지구를 통치한다는 게 골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권을 갖고 양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을 정치적으로 통일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팔레스타인의 궁극적 미래가 ‘두 국가 해법’에 따른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지속적 메커니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동등한 수준의 안보, 자유, 기회, 존엄을 갖고 각자 국가에서 나란히 살아갈 경로가 (가자지구 비전에)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블링컨 장관의 선언에 이어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이 통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고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목소리와 요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지난달 7일 시작된 전쟁 이후 가자지구 미래를 두고 제시된 정책 기조 가운데 가장 선명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 반대나 두 국가 해법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짧은 선언에 그친 면이 있었다. 이날 전격 선언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자지구 재점령 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혼란을 봉합하는 차원에서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투카 누사이라트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번 발언은 미국이 전후 가자지구를 어떻게 그려갈지에 대해 내놓은 발언 중 가장 뚜렷하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6일 미국 매체 인터뷰에서 “전쟁 뒤 가자지구 전체 안보를 무기한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재점령 반대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나온 답변으로 가자지구 통치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 정부의 방향성이 뚜렷하고 미국이 이스라엘 안보정책에 미칠 영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선언의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 통치 전까지 가자지구 재건을 비롯한 과도통치가 불가피하지만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가자지구의 과도기적 통치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 가장 먼저 부각되는 난제다. WSJ에 따르면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찾아 과도통치 개입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종전 후 가자지구를 맡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블링컨 장관의 요청을 정전이 우선이라며 일단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역량 부족은 더 근본적인 난제로 거론된다. 요르단강 서안 일부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부정부패, 실정, 이스라엘과 협력 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자지구의 미래가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의 복귀가 현실적 수순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이겨 가자지구를 점령했다가 2005년 관리 비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 이유로 철수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