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해… 사라진 것 되살리는 예술의 목소리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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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시 ‘있었지만, 없습니다’
12월 10일까지 F1963 석천홀
부산 연고 청년·중견 작가 14명
인간과 자연 함께하는 삶 고민

F1963 기획전시 '있었지만, 없습니다'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F1963 기획전시 '있었지만, 없습니다'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예술로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F1963 기획전시 ‘있었지만, 없습니다’는 자연 파괴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재생을 넘어 ‘부활’에 가까운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막을 올린 전시에는 부산 출신이거나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 14명이 참여했다.


류예준 'Settle in'. 오금아 기자 류예준 'Settle in'. 오금아 기자

■있었지만 없어지는 것

작가들은 도시 환경의 변화에 의해 사라지고 남겨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민정 작가는 공사 현장의 경계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을 봤다. 작가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 피어나는 자연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류예준 작가는 인공물로 만든 몸이 흙과 모래에 스며드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사람들이 보통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 생각하는데, 자연의 여느 생물과 다름없이 인간도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류 작가는 현재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현대미술회관에서 개인전도 진행하고 있다.

방정아 작가는 핵문명에 기생하는 좀비를 표현한 대형 걸개그림을, 이동근 작가는 고리원전과 후쿠시마 원전 주변 지역에서 포착한 ‘불안한 미래의 징후’가 담긴 사진을 전시한다. 이창진 작가는 쓰이고 버려지는 재료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평’과 ‘죽은 식물’을 전시한다. 홍티아트센터 입주작가인 최원교 작가는 다대포 무지개공단의 풍경을 기계적 움직임을 이용해 생성·소멸이 공존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하미화 작가도 개발로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담은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안재국 작가는 작은 고래나 참치를 잡던 낚싯줄로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형상화했다. 과거 초가집 굴뚝의 자리를 대체한 공장 굴뚝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전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사라질 것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유현욱 '생생'. 오금아 기자 유현욱 '생생'. 오금아 기자

■없어졌지만 되살리는 것

전시는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김경화 작가는 자개농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자개농을 자르고 붙여서 만든 작품으로 작가는 ‘다시 닦고 매만지는 노동’으로 빛을 되찾을 수 있음을 전한다. 정만영 작가는 소리를 매개로 한 작업을 선보이고, 박주현 작가도 소리를 내는 설치 작품을 전시한다. 박 작가의 ‘더 사운드 오브 어 트리’는 나무가 듣는 바람 소리에 망치·악기·총 소리 등을 더했다. 작품에 인체감지센서를 설치,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게 했다.

유현욱 작가와 정영인 작가는 식물을 통해 생명을 돌아보는 작품을 선보인다. 유 작가는 2019년 고성 산불, 2022년 울진과 삼척 산불 이후 화재 현장에서 수집한 탄가루와 각종 씨앗으로 구성된 ‘생생’을 전시한다. 불이 지나간 검은 땅에서 다시 일어나는 연초록 새싹을 통해 생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정 작가는 경쟁하지만 다투지 않는 식물들을 그려 타협, 상생, 공존하는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여상희 작가의 작품이다. 현재 대전에서 활동 중인 작가는 재개발 구역에서 나온 폐기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여 작가는 “재개발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있다”며 “실생활에서 당면한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 버려진 그릇들로 전시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서로 다른 집, 다른 지역에서 나온 그릇들이 때론 새로운 세트를 구성하기도 한다. 작가는 재개발 현장에서 수집한 그릇 500여 개를 전시장 바닥에 깔아두고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게 하는 ‘폐기 기물 교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여 작가는 “그릇을 가져가면서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꽤 있다”면서 “내가 그릇을 모으며 느낀 것을 다른 분들도 그릇 나눔으로 체험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여상희 작가는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그릇을 수집해서 나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오금아 기자 여상희 작가는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그릇을 수집해서 나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오금아 기자
박주현 '더 사운드 오브 어 트리'. 오금아 기자 박주현 '더 사운드 오브 어 트리'. 오금아 기자

‘있었지만, 없습니다’전은 오는 12월 10일까지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의 석천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와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이 석천홀 로비에서 진행된다. 오는 18~19일, 25~26일, 12월 2~3일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자투리실 드림캐처 만들기, 다육이 화분 만들기, 천연 캡슐 나무 만들기, 네모손잡이 냄비 받침 만들기와 같은 공예 체험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이다. 체험 신청은 현장에서 접수한다. 문의 051-754-0431(부산문화재단 문화공간팀 F1963).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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