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참전용사의 맞춤 신발
인체 기관 중 발은 가장 밑바닥에서 묵묵히 온몸의 무게를 감내한다. 손과 달리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기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도 발은 대체로 홀대받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발만큼 정교하고 민감한 부위가 없다. 발은 인체 기관을 통틀어 미세한 차이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부위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좁은 부위에 많은 구조가 서로 얽혀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뼈 206개 중 4분의 1인 52개의 뼈가 발에 있다. 또 214개의 인대, 38개의 근육이 발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렇게 많은 뼈와 인대, 근육이 몰려 있는 발은 몸무게 60㎏ 정도인 성인 기준, 하루 700톤가량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발은 인간공학의 최대 걸작이며,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한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발이 이렇게 소중하다면 이를 감싸는 도구인 신발 역시 신중히 고르지 않을 수가 없다. 발이 뼈와 인대, 근육으로 복잡하게 이뤄진 만큼 사람마다 발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같은 길이라고 해도 너비가 다를 수 있고, 또 발등의 높이도 천차만별이다.
발의 다양한 개인 차를 생각하면 평소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게 중요하지만, 일상에선 아직 흔치 않다. 근래 걷기 열풍이 불면서 점점 맞춤 신발의 수요가 늘고 있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은 곧 건강과 직결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 맞춤 신발과 관련해 훈훈한 얘기가 있었다. 부산의 한 업체로부터 맞춤 신발을 선물 받은 6·25전쟁 참전용사가 업체에 감사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이다. 영국군 출신인 이 노병이 지난 7월 정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가 신발을 선물 받고 “남은 생애 편하게 신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업체도 이에 “신발이 닳으면 새 신발을 보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부산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먼 유럽에서 낯선 나라의 전쟁터에 와 두 발로 한반도의 산하를 누볐을 이 노병에게 맞춤 신발은 아마 신발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사를 넘나든 숱한 고비와 고생의 발자취가 선물로 받은 이 맞춤 신발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이 맞춤 신발은 노병의 생애 마지막까지 그들의 피와 땀을 기억하는 증표가 될 것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